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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녹강으로 흐르는 물줄기 (지하 삼림욕장에서)
중국천주교회 순방기 (3)
♣ 하얼빈성당
○ 하얼빈시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폭사한 현장의 도시로 우리
한국민에겐 역사적인 기념도시이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 했을때 많은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가슴 에 “안중근 의사 의거지 탐방”이라는 리봉을 달고 단체여행을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먼저 안의사의 의거장면을 연상하며 묵념 기도를 올렸다.
○ 역에는 이금숙(헤레나) 자매님이 나와 우리를 영접했다.
○ 하얼빈 성당을 방문했다. 하얼빈 성당은 신축된 건물로 외관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매우 규모가 큰 건물이였다.
○ 본당신부님은 출타중이여서 안게시고 은퇴한 할아버지 신부님만 상면했다. 마침
조선족 회장이 성당안에 게셔 그분의 안내로 성당 내부를 구경했다. 회장의 말을
들으니 원래 구성당이 있었는데 너무 낡아 헐고 한국 신자 독지가 3인의 도움으로
재건축을 하여 작년에 축성식을 했다고 한다. 모두 5층 건물로 본당(약 500석 규
모), 소성당(조선족 전용성당), 교리실, 회합실, 피정쎈타 등 종합적인 기능을 가춘
연건평 약 2000평정도의 대성당이였다. 총회장님과 약 20분동안 하얼빈 성당의
실정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 총회장님과 약 20분동안 하얼빈 성당의 소개를 들었고,
○ 여기서도 레지오에 관심이 많아 레지오를 조직하고 싶다는 의향을 들었다.
그간 몇몇 신자들은 도문성당을 방문하여 레지오 참관을 했다고 한다.
○ 우리를 안내한 헤레나 자매님이 10월 말경 내한하여 약 2개월동안 머물게획인데,
그때 레지오에 관한 교육이나 회합에 참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하고 이를
주선해 달라는 요청을 하다.
○ 중국 동북 3성중 흑룡강성은 비교적 타 교구보다 종교 활동이 자유로워 신앙 서적이
나 기도서 등이 압수 되는 경우가 없다하여 앞으로 타 교구로 보내는 신앙서적이나
기도물은 하얼빈을 통해 우회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하얼빈본당, 본당내부
소성당(조선족전용) 하얼빈시내
하얼빈 역사 앞(안중근 의사의 거사장소)
송화강변 공원 입구에서( 사진 넘어에 광활한 송화강이 흐른다)
강변공원 강변 도시 송화강
♣ 무순성당
○ 무순 성당은 고딕식 오래된 건물로 고풍스러웠고 아담했다.
이곳의 신부님은 왕신부라고 하는데 한족신부로 25세의 젊은 신부였다.
○ 우리는 신부님과 조선족 교우 사목회장(여)과 선교부장과 함께 시내 음식점 으로 나
와 중식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조선족 사목회장은 5년전 한국의
어느 레지오 단체가 방문하여 1일간 레지오 교육으로 레지오 조직을 하고 지금까지
운영은 하고 있느데, 그 후 소식이 단절 되어 전연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여서
많은 애로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단원은 20여명인데 거의가 연로자여서 활동을 제
대로 하지 못한다고한다. 그들의 희망은 다시 한국에서 정통성 있는 레지오 강사가
와서 지금의 자기들의 레지오 운영을 평가 받고 싶고, 앞으로 레지오 재교육을 통해
정통성 있는 레지오를 구성하고 싶다는 희망을 간원 했다.
○ 무순에는 약 200명의 신자 중 조선족 교우는 50명 정도라 한다.
무순 왕신부님과(우 세번째) 무순-신부님,조선족 교우들과 만찬
♣ 소팔가자 성당
○ 이 성당은 길림성 장춘시 소팔가자성당 으로 장춘시에서 약 30Km정도 떨어저 있으며
한적한 시골성당인데 고딕 건물로 고풍스럽고 아담한 성당 이였다
○ 이곳은 1884년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약 3개월 동안 체류했
던 곳이다. 그래서 가락동본당 신자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성 김대건 신부님의 혼이
깃든 소팔가자 성당을 성역화하기 위해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위원장: 김현
욱,요한 보스꼬) 하여 98년 11월 김대건 성인 동상을 세운데 이어 99년 7월에는 약
10Km에 달하는 성당 진입로를 포장하고 “김대건로” 로 명명했으며, 작년 10월에는
양로원과 피정쎈타 그리고 성 김대건 박물관이 포함된 건물( 총건평 1500평, 5층)과
기도실등 피정자를 위한 부속 건물 2개(250평)를 완공하는 등 대 役事를 이뤘다. 가
락동성당 신자들의 큰 공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이곳 본당신부님은 주장우 (한족)신부로 우리를 친절히 맞아 주시고 자세한 설명을
했다. 이곳의 신자는 약 3000명 정도로 조선족신자는 없으며 이 마을 주민 거의모두
(90%이상)가 천주교신자이고 오랜 역사를 갖인 뿌리 깊은 교우촌 이라고 했다. 우리
는 신부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떠나왔다
○ 귀국하여 서양자 지음 중국 천주교회사를 보니 이 소팔가자 교회는 중국 교회내 대
표할만한 오랜 역사를 갖인 집단 교우촌이고, 공산화 과정중엔 소위 반혁명 세력들
이라 하여 대다수의 신자가 勞改營(사상노동개조 수용소)에 수용되어 오랜동안 박해
를 받거나 살해된 신자가 많은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양노원과 피정쎈타, 김대건 기념관 및 박물관이 함께있는 복합건물
♣ 단동 성당
○ 단동은 압녹강 바로넘어 신의주와 다리로 연결된 접경 도시이다. 이 도시는 우리 한
국의기업가 무역업자 관광객이 많고 이북사람도 많다. 거리상가에는 도처에 한글
글씨의 간판이 있고,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찻집들이 있으며, 길거리에선
김일성 뺏지를 단 사람이 잘 눈에 띄어 서로 반가우면서도 경계하는 모습이였다.
○ 단동신부 전영부(漢族)신부님은 3년전에 서강대학교에 유학 오셔 2년 동안 한국어
와 신학을 공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다
신부님은 작년에 단동으로 부임해 오셨는데, 오시기 전에는 무순성당에 게셨다고
한다. 신부님은 무순에 게실 때 최사무엘 형제의 매월 보내는 매일미사책과 평화신
문등을 받어 보았고, 작년 평촌 신자들이 무순을 방문 했을때 상면한 적이 있어서
구면 이였다. 몹시 반가워하며 환대 했다.
○ 오후에 신부님과 함께 음식점에 나와 만찬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전신부님
역시 레지오를 조직하고 싶다는 의향을 말씀하셨다. 신부님은 단동은 북한과 제일
가까운 곳이므로 북한 선교를 위해서 단동 성당이 그 가교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자는 제의를 했다. 신부님은 이제 45세 전후 정도인데 건장하고, 미남형 이면
서, 퍽 활달하고, 의욕적이며,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신
부님과 밤 늦도록 주연을 나누며 대화를 했다.
○ 단동성당 옆으로는 옛 초등학교 가 있었는데, 지금은 학교를 폐교하고 이를 개축하
여 약 60실을 가춘 양노원으로 사용하려고 건물 개축은 거의 마무리 되었으나 아직
노인들을 수용은 하지 않았다.
○ 단동성당에도 조선족신자가 약 20명 정도 있으나 아직 따로 조선족을 위한 미사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곧 실행하려는 게획을 하고 있다고 말씀 하셨다.
○ 다음날 아침 9시(평일에 6시, 9시 2회 미사가 있음)미사를 참석 했더니, 미사 후 신
부님은 우리를 제대 가까이 나오게 하더니 우리를 소개하고 인사 하도록 하였다. 우
리는 퍽 민망했다.
단동 성당 단동 전영부신부님과
단동성당 옆 경낸에 있는 양노원 압녹강 철교(신의주-단동) 강건너 북한 신의주
이상이 이번 우리가 순방한 중요 방문지 이다. 중국은 참으로 넓은 곳 이였다. 워낙 넓
은 곳 이여서 위 몇 곳만을 순방 하는데도 대강 3000-3500Km정도를 돌았다, 단기간
에 예상했던 여러곳을 두루 순방 할 수는 없었다. 피로 하기도 하고 지루 해서 아쉬운
감은 있지만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어서 다음주에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