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장백 폭포에서 흘러 압록강으로 간다
중국천주교회 순방기 (1)
◉ 머리말
지금 중국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회, 문화,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변하고 있다. 6년 전에 내가 중국을 방문 했을 때만 해도, 도시의 환경은 초라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지 낙후되고 침울 해 보였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넓게 정리된 도로며, 그 안에 우뚝 솟은 빌딩들이며, 아파트의 숲 등이 너무도 달라진 모습 이였고, 사람들의 표정도 활기차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 중국 천주교회는 과연 어떠한가? 그 실태와 동향을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이런 숙제를 간직하고 지난 8월 23일부터 9월 3일까지 10박 11일 동안 중국 동북 3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의 주요성당을 순방했다.
◉ 동행자 최명국.사무엘 형제
이번 순방은 중국선교의 선도적 역활을 하고 있는 최명국.사무엘 형제와 함께 동행 했다. 최사무엘 형제는 원래 우리동작동 성당 교우였는데, 1998년에 평촌으로 이사가 지금은 평촌성당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동작동 성당에서 “하늘의문 Pr" 단원으로 중국 선교를 위해 주 활동을 했는데, 평촌성당에서도 ”은총의 모후 Pr“ 단원으로 꾸준히 중국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나와 소속 본당은 다르지만 중국 선교에 관한 한 자주 만나 협의하고, 추진을 모색 했다. 이번에 우리가 순방에 오른 것은 작년부터 중국 연변지역에 도문성당과 인근성당의 몇몇 신부님, 신자들이 우리의 방문을 희망 한다는 전갈을 받고부터다. 그러나 나는 중국천주교회에 대한 회의감으로 방문 결행을 주저했었는데, 최형제가 일단 우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천주교회의 현실을 살펴보자는 설득에 늦게나마 순방의 여로에 올랐다.
최명국(사무엘)형제 쏘련 쟈루비노 항에서
◉ 순방 목적 및 경위
1999년에 우리 동작동 성당은 서울 쎄나뚜스 간부와 함께 도문성당 을 방문하여 레지오 집중교육을 시키고 3개팀의 Pr를 창단하고 돌아 왔었다, 그 후 6년이 지난지금 그곳 레지오의 활동은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지? 그 실상은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그간 서신과 전화로 대충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인 교신이 두절 되었고, 중국 당국의 간섭으로 레지오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러한 소식은 나와 당시 레지오 교육을 위해 중국을 다녀왔던 주역들에겐 큰 실망 이였다, 더구나 오랫동안 중국 도문성당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했던 동작동 신자들과 그 활동에 앞장서 주동을 했던 “하늘의 문 Pr"단원들의 입장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물론 중국선교를 위한 활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니 無爲無策함을 느꼈다. 그러나 하느님은 항상 우리 등 뒤에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다. 그간 음으로 양으로 갖은 어려움 속에도 중국에 있는 우리교포 신자들과 교신하면서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로서 또 기도물, 성물 등의 전달로 신앙성 향상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차츰 중국당국의 종교정책도 완화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러한 소식은 우리가 바라던 희망의 빛이 조금씩 보이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간 우리가 중국선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이러했다.
◉ 중국선교의 동기
1993년 당시 나와 최명국.사무엘 형제는 레지오 "하늘의 문 Pr" 단원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우리"Pr" 은 중국교포로 한국에 나와 노동을 하는 여자 1명을 대상으로 입교권면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을 맨 먼저 시작한 단원이 바로 최명국 사무엘 형제이다. 중국 교포는 그해 12월에 한국체류 만료가 되어 귀국했는데, 자기고향인 도문(북한 두만강 접경지에 근접 작은 도시)의 공소에서 영세( 세례명: 아네스)를 했다. 그가 영세 후 그를 통해 중국 천주교회의 어려움을 듣게 되었다. 90년대 들어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미미하나마 종교 활동이 허용되자, 그간 신앙을 잊거나 지하에서 숨죽여 신앙을 이어오던 신자들이 모여, 초라한 모습이지만 공소를 이루어 공동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포 신자들이 공동으로 모여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한글 기도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Pr은 신앙적 위로와 격려의 서신을 전하고, 성서, 기도서, 교리서, 묵주, 성물 등을 수집하여 전달하고 열성을 북돋아 주었다. 이렇게 시작한 중국선교는 점차 확대되어 많은 기도물 성물 등의 전달은 물론 물질적인 협조로 발전하였다, 우리 Pr은 주임신부(주상배 신부님)의 협조로 도문성당 신축기금을 모금하여 미화 만불(당시 약1000만원)과 신부님 제의12벌(약 400만원). 신부님 휴대용 미사 도구가방 일절등의 선물 을 전달했다. 이 기금으로 도문성당은 신축의 기초를 이룰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레지오 국제본부인 꼰칠리움에서는 우리의 중국 선교활동을 치하하고 중국에 레지오 전파를 공식 승인한다는 승인서를 접수했다. 이로서 우리는 쎄나뚜스 간부와 함께 도문성당을를 방문하여 레지오를 전파했다.
.
1986년에 신축된 도문 성당
최초로 중국선교의 가교역활을 한 최경희(아네스)자매
◉ 중국선교를 위한 활동연혁
그간 우리의 활동상을 열거 한다면 대강 이러하다.
○ 1993년3월 서울동작동성당 “하늘의 문 Pr”은 한국에 나와 노동을 하던 최경희(부모가
구교 신자임)자매를 대상으로 입교권면 활동을 시작하다.
○ 1993년 12월 초 귀국한 최경희 자매는 25일 크리스마스에 도문 교회에서 “아네스”라
는 세례명으로 영세. 이때부터 서신 교류 및 기도서, 성물 등을 전달하다
○ 1994년 도문 교회 전호승.분도 총회장으로 부터 동작동 성당 “하늘의 문 Pr"에 협조
요청하는 서신을 접수하다
○ 활동 사항을 본당 주상배.안드레아 주임 신부님께 보고하다
○ 1994년 8월. 단원 2명이 중국 도문 현지 방문 실상 파악하고 오다..
○ 1994년 9월. 본당신부님의 주선으로 3주간 2차 헌금으로 모금한 금액 1만불과신부님
제의 12벌, 신부님 휴대용 미사가방 일절(약 400만원의 가치)의 선물을 전달하다, 우리
가 송금한 금액은 성당신축기금의 일조를 하다
○ 1996년 8월 24일 김페헌 주교의 집전으로 본당(1350평/500석 규모) 축성을 갖게 되
었고 이때 동작동 성당 교우 35명 참석하다
○ 1998년 6월 “레지오 마리에” 설립 권면하고, 레지오 교본 및 회합 각종 서식 전달하다
○ 1999년 3월 27일. 국제본부 “꼰칠리움”으로부터 중국 “레지오 마리에” 설립 승 인서
접수하다
○ 1999년 5월 30일. 서울 쎄나뚜스 단장 강형일-루도비꼬, 서기 이창관-빠라글리또
Cu 단장-정재면.분도 그리고 Pr에서 이창수-방지거, 최명국.사무엘 5명이 도문성당을
방문 2일간 “레지오 마리에"에 관한 집중교육을 하고. 3개“Pr”(하늘의문 Pr, 남녀혼성
팀, 증거자의모후 Pr, 여성팀, 평화의모후 Pr,)을 설립 하고 “쎄나뚜스”직속Pr로 연계조
직하고 오다 (이 사실은 한국천주교 레지오 50년사 392 쪽. 별책 사진 177쪽에 기술
되었다.)
○ 2000년 12월 동작동 본당 구역모임 중심의 사목활동 일환으로 본당신부 지시에의하
여 “Pr"재편과정에서“하늘의 문 Pr"을 해단 하고, 중국선교의 주역을 하는 최명국 단원
이 평촌으로 이사 하게 되어, 평촌 성당 “Pr”으로 승계 되다.
○ 2001년 7월 10일. 중국 연길교회 염창원 빌립보 신부님 평촌 성당 방문. 미사집전 및
“Pr”의 주 회합에 참관 하고 훈화(제355차)하다.
○ 2001년 7월 24일. 염신부 서울 “쎄나뚜스” 방문
서울Se 지도신부, Se의 6간부와 중국 “레지오”전파에 관하여 논의하다.
○ 2004년 8월 평촌본당 교우 30 명 중국 연길지구 교회순방
○ 2005년 현재 우리본당은 그간 레지오의 구조변화로 중국선교활동이 단절 되었으나
평촌으로 이사 간 최 사무엘 형제가 그곳 Pr에서 신부님, Cu의 협조를 얻어 선교 사업
을 활발히 진행 하고 있다
레지오교육방문단-이창관Se서기, 최명국,강형일Se단장,정재면,이창수.
방문단 환영 기념 촬영
강형일.루도비꼬 쎄나뚜스단장 교육장면
이창관.바라글리도 쎄나뚜스 서기 교육장면
레지오 실습 장면
레지오 교육을 마치고 창설단원과 기념촬영
※ 양해를 구합니다. 화질이 이상하지요 ? 아나로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Scan 을 해서
올렸더니 잘 나오지 않는군요. 기술 부족인 탓도 있습니다.
이 글은 계속해서 올려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