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계림, 그 아름다운 숲의 노래
도이 김재권 (시인, 칼럼니스트)
1. 묵시의 시인
난해한 시대에 묵묵히 시를 쓰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고도 모진 짓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공허하기도 하고 더러는 서글픔이기도 하고, 가끔은 절필의 유혹을 떨치기도 하면서 도무지 알아 줄이 없는 자신만의 고독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 친지조차도 알 리 없는 목마른 현실의 상황에서, 때로는 도피라고 여길지도 모르는 세상의 시선을 혼자 감수해야 하는 버거움이기도 하다. 그저 묵언으로 시를 쓰고 묵고로 견디어내며 묵시로 시를 짓는 시의 사람. 그 배냇짓과도 같은 몸부림.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자아自我가 객아客我를 따르지 못하는 현실의 벽. 그 닫힘의 시공에서 열린 세계를 창조해내려는 괴리乖離. 그러하기에 삶 자체가 시적일 수만은 없어 더러는 침묵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대 공감한다.
계림桂林, 그 아름다운 숲의 영역에서 별다른 말도 없이 잠잠히 시를 쓰는 사람이 김림 시인이다. "너는 다시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것없는 한 마리 모기/ 혹은/ 일진의 광풍/ 한 떨기 백합이 되어야겠다"라고 노래한 독일의 현대 시인 권터 아이히(Guinter Eich)와도 같이, 자연과의 관계 속에 형성된 자기 경험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의미, 즉 진솔한 작품으로 자신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시의 사람이 바로 김림 시인이 아닌가 싶다. 첫 시집『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에 실리는 79편의 시편에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조용한 시인의 삶을 알 수 있는 시어들로 충만하다. 더러는 모순의 반대편에 서서 어쩌지 못하는 현실의 벽을 통감하기도 하고, 더러는 덧없는 인간의 관계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삭이기도 하고, 또 더러는 사랑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는 초연해 하는, 그러면서도 꿋꿋이 자신만의 메숲진 시의 숲을 가꾸어나가는 아름다운 묵시의 시인. 침묵이지만 침묵이 아닌 매혹스러운 최면에 걸린 듯, 그 아름다운 숲의 계곡을 따라 계림의 노래를 들으려 돌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2. 계림의 노래
시는 시작 행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고 이 존재론적 리듬을 언어적으로 산출産出하는 것이라 했다. 일찍이 동서고금의 시인들도 자연을 매체로 하여 자신의 속내를 곧잘 표출하고는 했는데, 성경聖經이나 불경佛經, 시경詩經에 나와 있는 시편들 또한 자연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신앙심, 인생관을 스스럼없이 산출한 존재론적 리듬인 것이다. 김림 시인의 작품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자연 속에 적절히 투영된 아름다운 숲 이슬과도 같은 노래들이다. 마치 풀이나 나무의 뿌리가 흙 속에서 흡수한 수분을 유관속維管束의 도관을 통하여 줄기나 잎으로 밀어 올리는 힘이 있듯이. 먼저 제1부 '아름다운 소멸'에서 그 응집된 시어의 힘을 만끽해 보도록 하자.
오늘도
나 혼자서 애를 태웠다
그대는 꿈쩍도 않는데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있는 힘 다해
그대에게 달려갔건만
질끈
눈을 감고 돌아앉은 무정함이여
어찌해야 그대를
마주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목이 쉬도록
그대를 불렀다
갈라지는 소리가 이내 풀썩 쓰러져도
그대는 여전히 못 박혀 있을 뿐
끝내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질긴 인연을 붙잡고
부축하는 어깨를 빌려 오늘도 나는
그대 뒷전으로 부서지며 가고 있는데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그대 등에 매달려
애원해야 할 것인가
다정한 갈매기 한 쌍
내 눈물 애처롭다 훔치며 나는데
그대 정녕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 하는가
- '바위를 사랑한 파도' 전문
사랑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아가페, 플라토닉, 에로스, 이 세 가지를 모두 합친 상호 교류의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혼자서 애를 태우는 외사랑이 하나 됨을 이루는 경우는 없다. 시 '바위를 사랑한 파도'는 파도를 모티프로 외사랑의 아픔이 배인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파도는 '있는 힘 다해/ 그대에게 달려갔건만/ 질끈/ 눈을 감고 돌아앉은 무정함이여' 꿈쩍도 않는 바위에 매달려 애원하는 파도의 열망, 하지만 바위는 온몸으로 던지는 파도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다. 아, 아, '내 눈물 애처롭다 훔치며 나는데/ 그대 정녕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 하는가'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일편단심 바위를 사랑하는 파도의 열정을 그대 바위는 아는가? 시인은 말한다. 사랑이란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함께 하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언제 저 꽃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색색의 웃음소리 쏟아지는
황홀한 조명 아래
꽃처럼 웃을 수 있을까
안개가 눈을 가린 숲길에서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만으로
그리운 발자국을 알아내고
이슬처럼 터지는 환희를
그려낼 수 있을까
생의 가장 아름다운 정점에서
아낌없이 혼을 내어 주고
저녁나절 산을 넘는 태양처럼
어둠에 스미는 나무 그늘처럼
찬란히 지는 꽃처럼
아름답게 지고 싶다
- '아름다운 소멸' 전문
발상의 능력이 남다르다. 그리고 진솔하다. 이 작품은 자문자답 형식의 기법으로 독자들의 마음 작용과 의식의 상태를 유발하는 수작秀作이라 하겠다. 그러나 혹여라도 시인의 삶이 작품과 상관관계에 있다면 이토록 위험할 수가 있을까? 꽃처럼 웃고 이슬 같은 환희를 느끼다 미련 없이 혼魂의 영역도 다 내어 주고는 찬란히 지는 꽃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그 아름다운 환상을 꿈꾸는 시인. 우리네 삶이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정점頂點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과거임이 분명할진대, 안타깝게도 소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그만 잊히고 마는 것이다. 그 잊힘마저도 초월하고 싶은 시인은 이미 문답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변증법적 대화의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2부 '가슴에 묻는 사랑'은 애가哀歌의 시편들로서 사랑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은 시인의 초연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소리를 들으면 빛깔이 느껴지는 것처럼, 바다를 보며 산을 생각하고 하늘을 보며 땅의 기운을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공감각을 독자가 자연스레 읽어 내려가면서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랑이라면
그저 두고 볼 일이다
손안에 쥐려고도 말고
내 의식 속에 가두려고도 말고
강둑에 서서
한평생 이별을 배운
저 갈대들처럼
강물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이별 앞에서
때론 눈물마저 감추어야 한다면
눈 한번 질끈 감고
이 악물고 돌아서선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것
들고남이 자유로운 저 바람처럼
매어 두지 않는 일
매달리지 않을 것
사랑한다면
그렇게 무심한 척
속 울음 삼키는 것
- '사랑이라면' 전문
우리 속담에 "강한 말은 매 놓은 기둥에 상한다."라는 말이 있다. 힘센 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기둥에 매어 놓는다면 그 기둥에 말이 상처를 입는다는 뜻으로, 사람을 너무 구속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하려 든다. 어느 정도 보편타당한 구속력은 필요할지라도 막무가내 구속만 하려 든다면 언젠가는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적당한 자유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하기에 '사랑한다면/ 그렇게 무심한 척/ 속 울음을 삼키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손안에 쥐려고도 가두려고도 하지 말고 매어 두지도 매달리지도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은 <인형의 집> 로라의 혼이 느껴지는 고백시(confessional poetry)의 유형으로, 시인의 시적 자아와 감수성이 잘 농축된 현대시의 표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독백 형식의 작품은 시 <모퉁이까지만>, <다 잊고 산다>, <가슴에 묻는 사랑>에도 잘 나타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지레 겁먹고 물러서는 일 따위
하지 말자 우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다가가노라면
멀기만 하던 길도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니
눈물에 가려 길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하리
- '모퉁이까지만' 부분
모두 잊고 산다
잊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다 잊고 산다
다 잊었다 믿고 산다
(중략)
그저
사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다 그런 것이려니
한다
- '다 잊고 산다' 부분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
사랑 하나 가지는 일이
그대
얼마나 큰 축복인 줄을
알고 있는가
사랑한다
사랑한다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은
애틋한 이름 하나 가슴에 묻고
한평생 벙어리로 사는 일
살아 있어도
산다고 할 수 없는 날을
형벌처럼 또 견디어냈구나
- '가슴에 묻는 사랑' 부분
시 '모퉁이까지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의 두려움에 대한 초연超然한 용기를, '다 잊고 산다'에서는 산다는 것이 다 고행이려니 하는 의연依然한 삶의 지혜를, '가슴에 묻는 사랑'에서는 사랑에 대한 축복과 지키지 못할 약속에 대한 미련과 회한 같은 것. 이러한 내면의 것들이 시인의 심경을 통하여 독백으로 잘 표출된 성숙한 시편들이라 할 수 있겠다.
여름도 아직은 머언
봄밤
때 이른 손님이 찾아들었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다가
마침내 내려앉은
모기 한 마리
숨죽이고 감행하는
생명을 건 흡혈
어찌 탓하랴
새끼를 위하여
죽음도 무릅쓴
제 어미의 아름다운 도벽을
- '아름다운 절도竊盜' 전문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나 물고기나 세상에 살아 숨을 쉬는 모든 생명체의 가장 큰 중심점中心點은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의 본능이라 하겠다. 모성애, 모기의 흡혈을 보고도 '어찌 탓하랴/ 새끼를 위하여 죽음도 무릅쓴/ 제 어미의 아름다운 도벽을'이라 표현한 시인의 초연함이 온몸에 전율로 느껴진다. 짜릿한 감동이다.
제3부 '숲의 연가'에서 보면 시인의 내면세계와 삶의 지혜, 즉 시인만이 가진 아름다운 숲의 절정을 만끽할 수가 있다. 삶의 지혜를 말한 인생의 원칙에는 육중관六中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토 하지메(伊藤肇)의 저서 <現代の帝王學>에는 석학 야스오카 세이토쿠(安岡正篤)의 육중관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육중관 중에는 호중유천壷中有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항아리 속에 하늘이 있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인데, 사람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항아리 속의 하늘은 꽤 아늑하여, 어떤 '항아리 속의 하늘'을 갖는가에 따라 사람의 풍치가 정해진다고도 했다. 또 세속적인 생활 중에도 마음가짐에 따라 독자적인 세계 즉 별천지別天地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라고도 했다. 조금은 은밀한 듯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만드는, 즉 비원秘苑의 계림사桂林史를 새로 쓰는 김림 시인이야말로 시 항아리 속에서 시선詩仙을 만나는 호중유천의 시인이 아닌가 싶다.
나는 풀숲에 숨어요
푸른 하늘 아래에선
그대 감히 바랄 수 없기에
풀숲 그늘에 숨어
그대 발목을 잡지요
그래도 그대
그냥 스쳐갈 겁니다
애꿎은 풀잎들만
옆으로 몸을 꺾고 울 테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라도
그대에게 젖어들 수 있다면
태양 아래 감히 그대를
꿈꾸어 볼 수 있을 테니
하루 종일
그대 기다리다 제풀에 지쳐
스르르 풀잎 타고 내릴지도 모를
나는 이슬로 태어나
오늘도 풀숲에 숨었지요
밤새 흘린 눈물만큼
몸을 나누어 풀잎에 기대앉아
이윽고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잠시 눈인사 건네 보는
나는 이슬입니다
- '풀숲의 노래' 전문
이 시의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시의 주체는 당연히 풀숲이라고 연상이 된다. 하지만, 내용을 좀 더 읽다 보면 풀숲은 객체이고 이슬이 그 주체임을 알게 된다. 주체를 숨기고 객체를 앞세우는 주객전도의 표현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품을 지닌 시인의 내면을 그대로 닮고 있다. 시인은 이미 시의 미묘한 흥취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묵시적 자생의 삶 속에서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풀숲에 숨어요 / 푸른 하늘 아래에선/ 그대 감히 바랄 수 없기에/ 풀숲 그늘에 숨어/ 그대 발목을 잡지요'라는 어딘가 객관적인 삶을 관조하는 태도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삶의 터치로 다가섬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 <풀숲의 노래>는 주체로부터 대신하여 시인의 심층 일원화, 즉 운율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여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수려한 문체로 접목한 아름다운 작품이라 하겠다.
맑은 시냇물처럼 흘러
그대에게 가고 싶다
뜨거운 햇살이
아예 두 팔 걷고 덤벼드는 어느 날,
연초록빛 그늘을 가득 안고
그대 발밑으로 흐르고 싶다
그대의 뽀얀 속살을 내밀히 적시며
내 마음도 잠시 희열에 젖고
그럴 때면 후두둑
놀란 숲길도 돌아앉아
저희끼리 한참을 소란스러울 텐데
그러건 말건
나는 정성스레 그대 발밑에 엎드리리
그대의 눈길이 지그시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아, 나는 새처럼 노래 부르리
맑은 카나리아처럼 머리칼 나부끼며
구름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리
- '숲의 연가戀歌' 전문
시 <숲의 연가戀歌>는 마치 동화 속 숲의 요정을 보는 듯 시의 숲 계림의 풍경이 절로 그려진다. 설렘과 기쁨으로 한껏 떠있는 요정의 달뜬 목소리가 들리는 듯. '그대의 뽀얀 속살을 내밀히 적시며/ 내 마음도 잠시 희열에 젖고' '그대의 눈길이 지그시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아, 나는 새처럼 노래 부르리/ 맑은 카나리아처럼 머리칼 나부끼며/ 구름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리' 원초적 자극기아刺戟飢餓가 용솟음치는 접합자극의 신음성呻吟聲, 이 시구에서는 잔잔한 여운이 생의 끝까지 환영으로 남을 기대나 예측을 암시적 또는 본능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마치 동반목同伴木이 있어 숲이 무성하듯이, 시인의 삶에서 신선한 설렘과 기쁨의 동반자적 행위 실행은 새로운 윤활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시인의 길, 그리고 가슴에 품은 그리움과 사랑, 그 황홀한 내면세계를 만끽하며 시를 쓰는 시인의 영혼은 언제든 구름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리라.
제4부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현상이 시인의 그리움과 사랑으로 만난다. 전생을 도입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율을 사실적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함축적인 메타포(은유, metaphor)로 시인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사유思惟함에 전혀 손색이 없다. 마치 거문고의 괘하청棵下淸과도 같이 작품 하나하나에 중심이 되는 시어들이 한 줄에 보인다.
전생前生부터 벼르고 별러
세상에 오는 이 어디 있던가
작정하고 오는 이 아무도 없다더라
삶이 서툰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
나뭇가지에 저 새순을 보라
죽을 힘 다해
여리디여린 고갯짓으로
업보 같은 저 세월 밀어 올리지 않던가
그런 뒤에야 얻는 생명의 날개
비로소 태양 앞에
바람 앞에 당당하게
맨몸으로 나설 수 있던 거지
삶이란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귀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
튀어나온 모서리 깎이지 않고
매끄러운 시작이란 없다
- '서툴게 시작하기' 전문
사람이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초능력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전생에 지은 업보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실수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정말 후회 하나 없는 매끄러운 삶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선과 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果報를 알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구분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말이다. 아마도 서툴게 시작하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이는 또 다른 생生의 고행이 될 테니 말이다. '삶이 서툰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 그렇다. 시인의 시구처럼 누구라도 삶이 서툰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비록 서툰 인생의 행로지만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뭇가지의 새순에 비유한 시인의 지혜가 비범하다 하겠다. '삶이란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귀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 튀어나온 모서리 깎이지 않고/ 매끄러운 시작이란 없다' 괘하청棵下淸이다.
늘,
중심中心의 바깥에서 나는 살았다
주변으로 맴도는 별이었다
궤도로 진입하지 못한 떠돌이별
나는 우주의 부랑아였다
누구도 선뜻 불러주지 않았던 이름
홀로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대에게서 전갈이 오고
서둘러 떠난 귀로歸路
全身이 불살라지는 극한極限을 맛보았다
나를 태워 바치는 공양供養
타는 고통으로도 행복했다
누군가는
내 타오르는 전신을 아름답게 바라볼 것이고
내 죽음이 결코 처참하다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누군가의 뇌리 속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은
진정 생애 최고의 기쁨이지 않겠는가
중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고난이라면
그대 마음 깊숙이 나를 묻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머언 세월을 떠돌다가
반짝 타오르는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나를 바칠 수 있으므로 행복하다고
그대의 마음 가운데로 가는 방법이
내가 죽어 차디차게 식어가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리하리라고
단 한 번,
고백과 맞바꾼
찰나의 빛
소신공양燒身供養 하는 별
-'중심의 바깥에서' 전문
별똥별을 스스로 소신공양 하는 별이라고 은유한 시인의 감각이 예사롭지가 않다. 시인의 시작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별똥별을 생각했다. 머나먼 우주 공간을 헤엄쳐 와, 마지막 생을 지구에서 마감하는 별. 못다 한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그 먼 세월을 달려와 단 한 번 가장 밝게 타오르며 마침내 숨지는 별. 마지막 순간마저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 불타는 별. 스스로 소신공양 하는 별.'이라고. 수년 전 겨울 산사에 묵으며 며칠 묵언 수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법당 뒷산을 오르다 흙빛으로 변해버린 솔방울을 보고는 순간 '아!' 하는 탄성으로 깊은 사색에 잠겼는데, '제 몸의 형체가 다 뭉그러지어 거름의 흙으로 변해버린 저 솔방울이야말로 스스로 소신공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시「중심의 바깥에서」는 자기성찰自己省察의 계기가 되는 철학적 메시지가 내포된 아주 심오한 작품이라 하겠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마는 '그대의 마음 가운데로 가는 방법이/ 내가 죽어 차디차게 식어가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리하리라고' 절창絶唱이다.
3. 시인의 혼
시인 이상이 가장 흠모한 언어의 마술사 김기림 시인은 1935년 조선일보에 <시의 제작과정>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시가 제작되는 과정을 나는 이렇게 갈라 생각한다. 1. 生에 있어서의 정신의 연소燃燒 2. 창조 활동 3. 작품화. 결국은 詩作은 삶의 복판에서 연소하고 있는 시인의 정신이 창조 활동이라는 예술 활동의 풀무를 거쳐서 작품으로 결실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 아, 참으로 명쾌한 답이 아닌가! 연소라는 말은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 많은 빛과 열을 내거나 또는 그런 현상을 지칭함인데, 시의 창작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외면의 삶이 화합 발산하여 연소하는 창조활동으로, 즉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객관적 미학의 가치를 작품으로 승화하여 마침내 그 결실을 보는 고뇌의 과정을 말함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렇듯 어려운 고행임에도, 평생을 독자로 남았어야 했을 문학애호가들이 어찌어찌하여 문단에 등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게 등단한 후, 자신은 등단은 하였지만, 취미로 글을 쓸 뿐이라면서 마치 겸손인 듯 손사래를 치는 이들을 대할 때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필자가 시문학 강의를 하면서 늘 묻고는 질타하는 말이 있는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미쳤거나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 한번 손을 들어보세요." 물론 그 질문에는 취미로 시나 시조, 수필, 소설을 쓴다고 말하는 등단 문인들의 어쭙잖음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음이다.
<취미로 글을 쓰려거든 아예 처음부터 등단하지 마라야지.> 그게 필자의 논리다. 등단했다는 그 자체는 바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기에, 늘 깨어 시 공부를 하여야 하고 늘 새로운 시의 세계를 펼치기 위해 남모를 문학적 고행을 기획하고 실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닌 어정쩡한 등단 문인들이 너무나도 넘쳐나는 세상이다. 제대로 농익은 작품 하나 내지 못하면서, 하 많은 인터넷 카페나 사이트를 넘나들며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치레의 교류 속에, 그저 인맥이나 넓히거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는 일상의 잡글이나 써대는 그들이 대체 제대로 된 글지이인가? 오늘날 독자들이 굳이 책을 사서 보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바로 '내 탓'임을 크게 깨우쳐야 한다. 프로의식조차 결여된 의식구조가 만연된 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어찌 독자들에게 책을 사 달라 요구할 것인가?
글에는 글지이의 혼魂이 살아 있어야 한다. 경영학의 마케팅 이론 중에는 "인간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의 농도에 따른 분류"라는 흥미로운 분류가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즐기는 모험적이고 창의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을 제1종의 인간형이라고 분류하는데, 늘 새로운 혼으로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예술인들이 이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시를 쓴다는 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야 한다는 것, 쓰지 않는다면 육신이 죽어 없거나 정신이 돌아버릴 만큼의 광열(狂熱;미친 열정), 광기(狂氣;미친 기운), 광흥(狂興;미친 흥치)으로 심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혼이 죽은 시들은 스스로 모두 폐시총廢詩塚에 묻어 세상에 나오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김림 시인은 그동안 묵시와 묵언으로 일관해 왔던 일상의 느낌과 생각들을 한 권의 시집『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에 담았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외면의 삶이 화합 발산한 소산所産들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존재를 알리어야 한다는 것, 그런 하등의 것들에 초월한 시인의 조용한 성품과 그러한 성격의 차분함이 이번 첫 시집의 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인간의 말은 침묵에서 비롯되어 침묵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 김림 시인이야말로 관계적 의미의 <침묵의 세계>, 즉 행위, 또는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는 가치를 잘 아는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침묵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나눌 줄 알며, 침묵으로 자연과 인간을 노래할 줄 알며, 침묵으로 원초적 현상을 음미할 줄 알며, 침묵으로 시를 쓸 줄 아는 어쩌지 못할 시의 사람이다. 그대 들리는가, 침묵으로 돌아갈 침묵의 소리 그 아름다운 숲의 연가 계림의 노래가.
-김림 시집『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도서출판 한글, 2011)
도이 김재권 작품 해설-

*** 김림 시인 ***
* 서울출생
*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문학의 향기』'바람' 외 4편 등단
*『시와 창작』작가회 사무차장 역임
*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원
* 공저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초록과 만나다>
<가벼움에 대한 애착> 등
칼럼니스트, 시문학 강사, 시문학 평론가, 문화문학기행 플래너 도이 김재권 시인 문학관 공식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oijkw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