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선 / 도이 김재권
살강...살강... 눈 오는 소리에 잠 못 이루나니
살며시 멀어지고 사위는 그 겨울의 긴 밤
그러다 가랑비 두어 방울 스치어 맘 시려 오고
이내 허무하리만큼 깊은 먼동이 깨이면
어느 결 물들인 상큼한 봄 님의 매무새
작은 뒷방에 이는 선 새벽의 기운이 살갑다
눈이 부신 장광의 아침 햇살이 따삽다
낙엽수 여린 잎에도 물이 오른다
살랑∼살랑∼ 살바람에 소르르 잠은 오는데
꿈결인가 살포시 안고픈 봄 님의 향내
-2003년 2월 영강문학 동인지「영산의 강」3호 발표작-
*********************************
南으로 / 도이 김재권
南으로 南으로 가니 진달래 피었어라
南으로 南으로 가니 그리움 진했어라
유채꽃 향기 풀빛 사연 담뿍이 담아
몽살이 나는 듯 저린 가슴에 두어야지
길섶에 파릇함이 온 세상에 떠있어라
윗입술을 무는 춘정에 절로 설렜어라
보고프던 임의 얼굴 눈망울에 가둬
눈이 멀어도 그릴 수 있게 새기어야지
南으로 南으로 가니 영산강 흘렀어라
南으로 南으로 가니 그리움 울었어라
가슴에 안은 사람 나뉘는 애달음에
봄빛이 환장하게 서러운 애별이었어라
*몽살: 꿈속에서 앓는 몸살.
-시집「남도 스케치」(도서출판 한글, 2010)-
-월간「신춘문예」2005년 4월호 발표작
*********************************
봄이어요 / 도이 김재권
봄을 먹었어요
신선한 아침 식탁엔
상큼한 냉잇국에 달래랑 봄동이랑
돌미나리 돌나물 봄나물이 싱그런
봄이 왔어요
생긋한 아침 서재엔
크리스털 꽃병에 보리랑 버들강아지
하얀 목련이 봄물 흐르는
봄이 왔어요
순애의 외출 옷차림엔
산뜻한 롱스커트에 보드란 블라우스
살빛 스타킹 촉감에도 설레고 마는
봄, 봄, 봄이어요
-월간「신춘문예」2005년 4월호 발표작-
*********************************
사월의 세레나데 / 도이 김재권
하얀 목련에 깃든 달빛이 어찌나 살가운지요
몇 날을 보고 또 봐도 설레기만 하니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 없더이다
눈부신 사월의 빛은
그대로 살빛이 되고
영롱한 물빛이 되어
이내 몸과 마음에 찬란한 기운을 내려주니
이 밤도 그대 창문을 활짝 열어주오
내 온몸의 열기로 뜨겁게 노래할지니
-월간「신춘문예」2006년 4월호 발표작-
*********************************
지금 나주에 가면 / 도이 김재권
지금 나주에 가면 하얀 배꽃과
거기 영산포 영산강에는
샛노란 유채꽃이 한창일 거야
미치겠어 가고 싶어서
그리움이 허무 되는 현실의 삶이 하냥 미운 하루
지금 나주에 가면 하얀 눈꽃을 맞고 싶어
상아색 꽃물 만들어 가슴에 심은 얼굴
생채화로 그릴 거야
아, 아 꿈이어도 나는 가야하리
그리움 이은 그리움이여
-시집「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도서출판 한글, 2007)-
-월간「시와글사랑」2006년 5월호 발표작-
*********************************
춘삼월 / 도이 김재권
사월 첫째 주엔 온종일 시만 노래하고 다녔다
2001년 춘삼월에 쓴 생일 축시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난 날엔
하루를 다 그 사람 생각만 하자
시간의 흐름 묶어둔 채로
한밤을 깊이 사랑하여
창문 밖 새벽 물안개 풍경을
맑은 눈빛으로 같이 보리라’
사월 둘째 주엔 경남 양산 천성산에 있었다
사위어가는 목련 꽃잎, 산바람에 파르르 떠는 모습이
날갯짓을 하는 배추흰나비의 호소행(呼訴行)인 듯
절로 몸을 달구게 했다
집착의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하고
기어이 무거운 바랑을 짊어지고 가려는
단식여승(斷食女僧)의 고행을 무엇이라 말할까
사월 셋째 주엔 충남 예산 덕숭산에 있었다
추사의 고택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명당의 지기(地氣)를 온몸으로 받았다
ㅁ자형 구조의 안채에 꽃눈이 날아들었는데
순간, 마당에는 수많은 추사의 낙관이 찍혔다 흩어졌다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수덕사의 기운을 마셨다
애잔한 사연 간직한 수덕여관의 인연들
만공, 일엽, 나혜석, 김태신,
이응로도 박귀희도 모두 어디를 갔을까
백송아, 암각화야, 소은아, 너는 알고 있느냐
동전 두 닢으로 동자상(童子像)에 합장한 마음도
촉촉한 막대 사탕의 살가운 이연(異緣)도
풀잎 띄운 약수 몇 모금에 모다 내려놓고 왔음을
사월 넷째 주엔 북한산 인수봉만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는 스무 살 청춘이 아니야
부질없는 줄다리기와 술래잡기를
언제까지 이어 할 것인가
하늘의 별도, 달도, 해도, 모두 다 주었거늘
이슬아, 이슬아,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다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시집「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도서출판 한글, 2007)-
-월간「신춘문예」2006년 6월호 발표작-
*********************************
백련사 동백꽃처럼 / 도이 김재권
제 몸의 붉은 피
모두 토해 버린
백련사 동백꽃처럼
이 몸의 끓는 피
동백꽃으로 피워
모다 비우고 싶다
-시집「남도 스케치」(도서출판 한글, 2010)-
-계간「참여문학」2009년 9월 가을호 발표작-
*********************************
봄밤 / 도이 김재권
봄밤을
적시는
빗소리에
괜스레
눈물이
난다
창밖에서는
봄이
울고
창안에서는
내가
울고
-시집「남도 스케치」(도서출판 한글, 2010)-
-계간「창조문학」2010년 4월 봄호 발표작-
전남 보성 대한다원 삼나무 숲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