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행동이 다른 이에게 빛이 되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돌름 프란치스카와 덜겅데레사, 토요일 미사에 함께 하였다.
그들의 옆에 또 살짝 함께 앉으시는 수녀님,
그 성령의 은혜를 함께 받고 싶은 마음이실 것이다.
한 개인의 잘못으로 교회가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또 한 개인의 신심행위가 교회에 속한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얼른 회개하고, 보속의 삶으로 더욱 열심히 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잘못을 덮어 주실 것이다.
요즈음 유행되는 미투...바람,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때, 그 당시에 잘못했다는 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목숨까지 바쳐 정의를 말해야 했을 것이다. 사회적 구조적 악에 의해서, 아니 인간적인 약함에 의해 한동안 잘못, 죄에 빠진 생활을 하였더라고,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쿼바디스... 돌아가서 죽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비겁함은 용서되지 않을 것이다.
몽골말에 "아니요 할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아니라고 해서 잠깐 불협화음, 불화가 생길 지는 모르지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면 성공하지 못한다.(Үгүй гэж зоригтой хэлж сур. Ингэх нь заримдаа эвгүй байдаг ч, үгүй гэж хэлж сураагүй урсгалаар явдаг хүн, өөдтэй явсан нь үгүй.)
정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와 굳셈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작은 행위이지만, 빛이 되는 행위가 되고, 어둠을 드리우는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드려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