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는 한 그곳에 있는다..

2000. 3. 22. 오후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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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이거야...원...

운이 나쁜 하루인지 아니면 좋은 하루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지요..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휑하니 떠나는 버스.. 놓쳤다... 지각이다...

그리고 학교에 가니 깜박 잊고 안가져온 숙제... 숙제 베끼는데 마치 속기사가 된 기분...

게다가 점심을 먹고 실험을 했는데 그만 조원중 하나가 실수로 플라스크를 깨먹었습니다.. 플라스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던 product... 꼬박 3주에 걸쳐 얻은 귀중한 생성물이었는데... 망연자실하여 화도 안났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은 절대 안된다고 사정사정해서 결국 내일부터 아침 7시에 만나서 다시 실험을 하기로 했지요.. 식목일도 반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실험실에서 나오니 환한 오후 5시.. 그래,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분전환이나 하자.. 하고 같은 조원들과 봄기분을 만끽하며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조그맣게 붙어있는 포스터 하나... 가톨릭 동아리 ’젬마’에서 알리는 개강미사 안내였습니다.

아...맞다... 오늘이었지...

학기초의 개강미사를 빠지지 않고 드렸었는데 이번 학기는 도저히 시간이 안돼서 일찌감치 포기했었죠..

잠시 갈등을 하다가 중요한 약속이 생각났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습니다. 아쉬운 눈빛들을 뒤로 하구요..

소강당에 도착하니 5시 30분..

여유있게 미사를 드렸죠..

 

근데 어쩔 수 없는 것... 정말 직업병입니다..

미사 도중에 미사해설자의 실수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사실 미사 해설이 좀 어렵습니까.. 처음 주송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긴장은 당연한 거지요..

근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기서 종을 왜 안치지... 아무래도 여기서 실수할 것 같은데..

심지어 본당에 있는 주송자용 전례양식파일을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왜 그렇게 조마조마한지...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겁니다.

 

한참 동안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다가 아차 싶어 혼자 픽 웃었죠..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지금 이런 조그만 실수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갑자기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더군요.. 그리고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청년 신앙인이기 이전에 전례부 교사인 듯 말이죠..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웬지 새로운 힘을 얻은 것 같고, 모든 일들이 다 잘 될 것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과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점입니다. 저는 사랑의 최고 형태는 고독하고 절망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저는 여러분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언젠가는 여러분을 만나러 다시 오겠습니다. ... 여러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사십시오."

                                             - Ernesto Che Guevara -

 

존경하는 교사 여러분... ’인간적인 존재로 머무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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