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6차] 아름다운 이야기

1999. 9. 30. 오전 12:12:42

글자

***********************************************************

제목 : 눈 감아라 눈 감아라

***********************************************************

 

집에 석유보일러가 고장이 난 모야이다. 펑하고 돌다가 갑자기 피시시 꺼져 버리곤 했다. 보일러 시공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공기’가 찬 모양이란다. 어디어디를 눌러 보고 다시 전원을 눌러보란다. 시키는 대로 해 보면 핑하고 터졌다가는 피시시 그쳐 버리곤 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시공자가 왔다. 다짜고짜 ’공기’가 찼다며 ’공기’를 빼기 위해 물을 먼저 빼내야 된다며 호스를 가져오란다. 호를 어디에 끼우니 뜨거운 물이 호스를 따라 나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마당에 퍼지는 것이었다.

이때 어머니께서 재빨리 마당에 나오시더니 마당에 퍼지는 뜨거운 물 가까이에 대고 이렇게 조용조용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엄숙하고 진지하여 그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말씀이 끝나자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어머니의 말씀은 너무나 진지하였다. 뜨거운 물이 땅에 스며들어 땅속의 벌레들 눈에 닿으면 눈이 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벌레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일러 준다는 것이다.

 

캄캄한 땅 속의 벌레들의 눈.

어머니와 내 둘레 캄캄한 어둠 속의 눈들이 반짝이며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별빛 하나 다치치 않으련다. 별빛 하나 다치게 해선 안된다.

 

별빛처럼 빛나는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눈빛들에게 지금 우리는 "눈 감아라 눈 감아라"는 경고도 없이 뜨거운 물을 마구 붓지 않는지.

 

 

- 김용택(시인)/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1997 창작과 비평사에 실린글입니다. -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신입교사학교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