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언제부터인가 TV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속의 백혈병은 감기보다도 흔해서 사랑하는 연인들의 단골 이별 공식이
되고, 결혼을 코 앞에 둔 연인들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이복 남매이거나
상종할 수 없는 원수 같은 집안의 후손입니다.
몇 년 후라는 마술 같은 자막만 지나가면 유학을 다녀온 주인공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 대기업의 본부장, 실장님으로 등장합니다.
'막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드라마들이 판을 치고 있고, 시청률만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방송에서는 이 말도 안되는 드라마들이 소위 '시청률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현실의 드라마가 화면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사순시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한 주간 동안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하여 지상 생활의 마지막
한 주 동안에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두 복음을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그토록 싫어하는 막장 드라마가 다시 한번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열렬한 환호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군중은 어느 새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악에 바친 모습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도대체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벌어지는 상황인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막장의 원인 제공자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고, 그 아픔을, 그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시고 어루만져주고자
하실 뿐입니다.
변한 것은 군중들입니다.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의 등장이라고 여겼던 예수님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의 손에는 성지가 아니라
돌맹이가 들려집니다.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들의 이기심과 질투로 시작된 거짓 증언과 가르침에 속아
구원을 갈망하는 '호산나'라는 외침은 구세주 따위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아우성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어쩌면 저렇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쩌면 우리하고 저리도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곱게 모아 주님을 향해 기도하던 내 손이 어느 순간 이웃 형제자매를 향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고, 아름다운 성가를 부르던 내 목소리가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이를 힐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심은 지도자들과
세상의 거짓 가르침에 따라 손쉽게 잊혀지고 버려질 뿐 아니라 심지어 하느님과
교회를 비판하는 악다구리로 변하기도 합니다.
낯설게만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감추고 싶은, 아니 자각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기 괴로운 것은 우리가 오늘도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하진 실바노 신부(한마음청소년수련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