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늘 우러러 바라 볼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바라봄의 관상, 바라봄의 기쁨, 바라봄의 행복, 바라봄의 평화입니다.
바라봄이 우리 구원을, 삶의 꼴을 결정합니다.
바라보면서 바라봄의 대상을 닮아갑니다.
바라봄 중의 바라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늘과 땅, 너와 나의 소통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사랑의 눈길로 바라볼 때 탈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위로와 치유요, 깊이와 품위의 삶입니다.
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명나무, 구원의 나무라 일컫습니다.
하여 늘 삶의 중심에 두고 바라보라고 성전마다 제대 중앙에 높이 달려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죄로 무너지기 시작할 때 즉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다시 추슬러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평, 불만이 죄입니다.
불평, 불만이 계속될 때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내면이요, 이렇게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끄집어 내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광야의 시련에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며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라기 나오."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진정 덕은 불평, 불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하고 감사할 때 덕이요 삶을 깊고 품위있게 합니다.
하느님의 하늘을 날게 하는 영혼의 양 날개가 찬미와 감사라면,
파멸의 심연에 추락케 하는 영혼의 양 날개는 불평과 불만이요,
바로 불평으로 많은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감이 이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느님의 은혜로운 응답입니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모세는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았고, 뱀에 물린 사람들은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아났다 합니다.
바로 구리뱀이 상징하는바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했듯이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를 위해 은혜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뿐 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바로 위에서 오신 분,
온전히 아버지의 뜻대로 사신 분,
위로 들어 올림을 받으신 분,
내가 나이신 분,
즉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주님을 늘 믿고 바라볼 때 우리 또한 죄 속에 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생명과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마침내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백할 수 있으니 십자가 주님의 은총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늘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심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당신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용서와 더불어 한량없는 축복의 평화를 내려주십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나 천상 선물을 갈망하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