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들다

2013. 10. 5. 오전 7: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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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만들다

     

     

    중국 근대의 대문호인 루쉰은 고향이라는 글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구의 신부님들과 연수를 떠났는데, <추자>라는 남도와 푸른 섬 제주 사이의 섬을 방문했습니다. 그 이유는 <추자>라는 섬에 남다른 아름다움이나 볼거리가 많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휴양 시설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곳에 특별한 분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황경한'! (또는 '황경언'이라고도 불립니다.) 한국 교회의 첫 번째 대박해였던 '신유대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치명자 '황사영'(알렉시오)의 아들입니다.

     

    그가 대역 죄인으로 처형된 후, 가족들도 관노의 신세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경한의 어머니 '정난주(마리아)'는 제주로 유배를 가던 중, 2살의 갓난아이였던 아들이 평생을 관노로 사는 것을 면하기 위해 고심 끝에 조정에는 "경한이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보고하도록 사공들에게 애원하였고, 이에 황경한은 '추자'라는 섬에 남게 되었습니다. 후에 젖먹이를 '오씨'라는 분이 거두어 길렀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황경한'은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정난주(마리아)'도 아들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지엄한 국법 때문에 신분이 탄로나지 않도록 평생을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 합니다.

     

    '황경한'이 누워 있는 무덤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침저녁으로 제주도가 보이는 곳에서 문안의 인사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평생을 볼 수 없고, 연락도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어머니가 계신 곳을 바라보며 문안의 인사를 드렸을 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살아있음에도 그 사실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았을 그 어미의 애달픔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정난주(마리아)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정약용, 시복시성 청원 중인 정약종(아우구스띠노)의 조카이며, 학자였던 정약현의 딸입니다. 조선 왕조 후기를 빛낸 위대한 학자 가문의 후예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도, 그녀 자신도, 그녀의 아들도 하느님을 좇는 삶으로 인해 인간적 가치를 모두 내려놓습니다.

     

    믿음 때문에 가문이 풍비박산나고,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이 갈라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졌지만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보았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가혹한 세상의 차가운 바람과 시선에도 좇았던 그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녀가 좇았던 꿈, 그 아들이 벼랑 끝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게 했던 마음, <백서>를 쓰며 조선의 사회와 백성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한 아버지와 남편의 희망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의 꿈과 희망, 그 꿈과 희망을 걸었던 동료들과 후예들.... 그 희망의 얼굴이 오늘 성당 안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믿음의 길은, 길이 아니었던 땅을 걸었던 수 없는 앞선 이들의 걸음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 것도 없던 곳에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앞서 걸었던 분들은 다시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그 길을 잘 걷고 있느냐?'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자, 그것이 길이 되었다”"

     

     

    -성준한 바르나바 신부(광릉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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