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9일 (녹) 연중 제26주일

2013. 9. 29. 오전 6: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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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9일 (녹) 연중 제26주일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쓰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 재산을 제 마음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병들어 고통 받고 있는 거지 라자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주일 미사에 참여하며 우리가 가진 것을 다시 주님께 돌려 드리도록 다짐합시다. 독서 <이제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아모 6,1ㄱㄴ.4-7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십시오.> 1티모 6,11ㄱㄷ-16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루카 16,19-31 아모스 예언자는 남부 유다(시온)와 북부 이스라엘(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이 흥청거리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들은 자기 동족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온갖 사치스러운 연회를 벌이고 있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동료이자 아들처럼 여기는 티모테오에게 권고한다.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도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아 많은 이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라고 권하는 것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하여 이 세상의 삶과 죽은 뒤의 삶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암시하신다. 이 세상에서 누린 호화로운 삶이 죽은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음). *손홍규 작가의 '투명 인간'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마치 투명 인간처럼 취급되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감히 표현해 보건대, 오늘날 우리 사회가 '투명 인간의 집합체'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하철 안에서도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습니다. 행인에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어도 함부로 나서길 꺼립니다. 정의감에 불타 나섰다가는 오히려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학우들끼리 서로 투명 인간이 되어 버리고, 가정에서도 식구들끼리 투명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거지 라자로는 부자에게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부자는 값비싼 옷을 즐겨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집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거지를 보지 못합니다. 늘 그 대문을 지나치면서도 어떻게 그를 보지 못했을까요? 정말 투명 인간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사람', '내가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 ' 괜히 도와주었다가 나에게 달라붙을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지 않은 척하며 그냥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옷 가운데 하나라도 그에게 걸쳐 주었다면, 자기의 음식 가운데 조금이라도 덜어 주었다면, 거지 라자로는 한층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투명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투명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상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매일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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