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루카 2,48)
얼마 전 저희 본당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시골 작은 성당인지라 천천히 여유롭게 해도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본당엔 어르신 홀로 또는 겨우 두 분 정도 계시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방문을 마치고 교우집을 나설 때 등 뒤가 허전하곤 했습 니다.
대부분 적지 않은 자식이 있음에도 그리 외롭게 계실 수밖에 없는 농촌 현실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가끔 자식들이 찾아와도 필요한 대화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잠시 머물다 가 허둥지둥 서둘러 떠나는 경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가정에는 대화가 많이 부족하고, 나아가 대화를 잘못해서
다툼이 일어나고, 오랜만에 만나 가족이 불편한 마음으로 흩어지곤 합니다.
오늘 성모님의 현명한 말씀에서 적절한 대화방법을 찾았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만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사흘 동안이나 부모를 고생시킨 나쁜 자식이라고 야단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잘못한 행위에 꾸지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설명하셨습니다.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힘들었던 처지를 자상히 설명하면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상대에 대해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
알아차리게 했습니다.
이런 대화 방법은 부모와 자식 사이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화에서도 꼭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저 자신이 어렵거나 힘든 면에 대해서만 강조할 줄 알았고, 상대의
모습에 판단하고 심지어 심판하는 어리석음이 앞서기도 했습 니다.
상대가 자신을 보거나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쏘 아붙이기도 했었습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잘모를 수 있는 관계가 바로 가족인듯
싶습니다.
그것은 대화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많이 경험합니다.
또 적절하지 못한 대화방법이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정확한 사실을 잊게 하거나 왜곡시키기도 해서 일이 어렵게 꼬이는 경우도
경험합니다.
성가정은 단지 모든 가족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삭막합니다.
사랑의 관계와 그 관계를 위한 따뜻한 대화가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말씀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자녀인
우리 사이를 사랑으로 엮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뻐하며 믿는 우리 신앙인은 이제 우리 안에 말(대화)을 수북이
쌓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 포근하고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부드럽고 애교스럽다면 금상첨화겠죠?
-라병국 아우구스티노 신부 (상리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