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받는 날
눈물로 얼룩진 생활 속에서 허덕여 왔던 생활이 한 순간 하느님이 내어주신
손을 잡음으로서 상상도 하지 못할 삶으로 바꿔졌었습니다.
예비신자 생활 6개월을 거쳐 신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기도하면서도 기도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는 날라리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 속에서는 "당신의 힘으로 당신이 바라는 데로 다시 한번
제게 삶을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 나오는 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성격도 엄청 급했습니다.
아직 그 급한 성격을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한 때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잘못을 인정하기 전에 매질이 앞섰던 날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기에는 사업에 망하고 난 뒤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습관도 배여 있었다고 해야 솔직할 겁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느끼지 못한 체 부모 앞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지만 더 이상 맞지 않으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아마 이 당시 우리 애들의 마음속에는 아빠가 무슨 신앙인이야 하는
반발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들이 한때 교회 가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들이 큰일을 벌렸습니다.
애들은 "오늘은 아빠에게 맞아 죽었구나"하고 각오를 했는지 제가 집으로
들어서자 매를 들고 제게 왔습니다.
그런데 분명 매질을 해야할 제가 "너희들 뭐 잘못했는지 알아?
인정해?" 애들은 처분만 바란다는 식으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아빠, 너희들에게 엄청 실망했어, 난 너희들이 제일 예쁜 공주로
자라주기로 바라고 있는데, 지금 너희들은 망나니라도 보통 망나니가 아니야,
또 이런 일 반복할 꺼야?"
순간 애들은 멍청해져 버렸습니다.
제가 재차 반문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지만 제가 돌아가라 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일 없기를 바래,
그리고 예비숙녀의 모습으로 예쁘게 자라주기를 바란다. 가서 자라"고 하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일어나질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애들의 변화는 엄청 컸습니다.
나의 변화가 애들에게 생기를 불러일으켜 주었고 나의 변화가 애들에게
새로운 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백 사람 중 한 명이 "성서"를 읽으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라고 합니다.
현시대의 교회가 사회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복음화를 부르짖고 있는 의미도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은
내게서 그리스도인을 읽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음으로 내게 성령이 임해지고 그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속에는 또 다른 미래가 설계되고 행복으로 꾸며지는 삶, 매사 짜증나든
생활이 즐거움으로 변하고 부족한 생활 속에서도 가정 안에는 평화가 머물고
웃음이 생겨나다 보니 기쁨이 찾아오는 삶, 믿음으로 인해 내가 자상한
아빠가 되고 집안에는 웃음의 꽃이 피어나게 된다면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충분히 삐뚤게 자라날 수 있었던 여건 속에서도 삐뚤지 않고 착하고 밝고
명랑하게 자라준 애들이 이제 다시 하느님의 축복과 많은 분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한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건하게 이마에서부터 배꼽까지 크다랗게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찬미 드리며 감히 말씀드립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으십시오.
매번 미사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란 의미를 상기하고 가슴에
새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