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의 가라지
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도록 놔둔다.
마지막에 가서 가라지만 따로 묶어 불태워버리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든 생각은 섬뜩함이었습니다.
초반에는 그냥 좀 봐주겠지만 막판에 가서 제대로 손 한번 보시겠다는 말씀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 마다 순간순간 분노하시고 강력한 처벌을 가하시는
하느님이라면 우리 가운데 과연 남아있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하느님은 철저하게도 인내하시는 하느님,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회개를 바라시는 하느님, 단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고
막차라도 타게 하시려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일일이 다 통제하신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습니까?
만일 우리의 아버지께서 엄격한 아버지, 단 한 치의 실수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아버지, 쉽게 보복하고, 쉽게 진노하는 아버지였다면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면 죽음인데, 돌아가면 무시무시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객사하면
객사했지 어떻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는 늘 당신 두 팔을 활짝 벌리시고 우리의 돌아옴을
기다리시는 열려계시는 하느님, 늘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환대의 주님,
우리가 돌아갈 때 마다 그저 용서하시고 등 두드려 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양승국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