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라는 건물의 기둥 하나, 진리

2023. 1. 20. 오전 5: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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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복음화 사명의 도구인 사회교리: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

-'세계 평화'-라는 건물의 기둥 하나, 진리


요즘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타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앉으나 서나 많은 이가 전동차 안에서 종이신문을 읽었습니다. 

조금만 정성을 기울이면(?) 큼지막한 제목 덕분에 다른 사람이 어떤 내용의 기사를 

읽는지 짐작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신문의 자리를 스마트 폰이 차지합니다. 

그리고 명칭에 걸맞게, 언제 어디서든 게임이나 음악, 드라마나 영화 감상, 상품 구매나 

은행 업무, 정보 검색이나 학습 등 못 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양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정치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

(「간추린 사회교리」 414항)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는 모습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문이든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든, 이른바 '대중/사회 매체들을 통해서 우리가 

습득한 정보가 객관적인가'를 식별하는 일은 계속 중요한 과제로 남습니다. 

시민의 입장에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그리고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제대로 알아야 책임 있게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라고도 합니다. 

시민에게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건 매체에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시민이든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매체든 '완전히 객관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편향성'(偏向性) 때문인데, 근본적으로 이 '편향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과 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나 사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으며, 또 그것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각 사람과 사회는 고유한 주체성을 지닌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편향성이 지나치거나 주체성이 폐쇄적으로 되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상은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인데, 빨간색 안경을 쓰고 세상이 빨갛다고, 또는 파란색 

안경을 쓰고 파랗다고 억지를 부리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 같은 배제와 배타적 태도는 사람들 사이, 집단들 사이에 분열을 낳을 수밖에 없고, 

사실 우리는 오늘날 이를 어렵지 않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찰 주제가 제시됩니다. 

첫째, 공동체(사회)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의 해결책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둘째, 이를 전달하는 대중/사회 매체는 여럿이어야 합니다(다원성), 

셋째, 정보는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공동선, 다시 말해 진실과 자유,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의 생산과 전달과 

수용이어야 합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지상의 평화」(1963)는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로 보편적 평화를 

구축하는 것에 관한' 사회 회칙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4년 제37차 세계평화의 날 담화(4항)를 통해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 위에 세상의 평화를 건설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을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로 꼽으며, 이들을 

'세계 평화'라는 건물을 떠받치는 '네 기둥'에 빗대어 가르칩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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