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만이 답이다
오늘도 강론을 쓰면서 ‘사랑’이란 단어가 안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럴 때마다
살짝 혹은 스을쩍 찔린다. 난 이걸 '일상적 찔림 현상'이라고 부른다.
어차피 우리에게 완성이란 단어는 없는 것이고 예수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해준다고 하셨으니 오늘을 뭐 그리 대단하게 살려고 애쓰진 말자.
하지만 안주와 무관심의 병에 걸리지 않으려 함이 우리에겐 겸손의 덕이라 불리는바,
이 덕목이 내 곁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을 살되 필요한 과거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향하면서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머리는 도는데 마음의 순발력은 제자리걸음이고 몸은 점점 둔해지는 거 같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우리를 다시 되살려줄 것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아니까. 사랑을 꾸준히 일깨우자.
의로움으로 방향을 잡으며 내적 외적 평화의 길을 가야 하리.
이 글은 '7년 전의 오늘' 썼다고 페이스북이 알려준 것입니다.
'언제 이런 글을 썼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읽어보니 나름 괜찮은(?)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당시엔 좀 더 이론적이고 사변적이었던 것 같네요.
'이렇게 살면 될 거다, 좋을 거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는 살지 못한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7년이 지난 지금, ‘몸으로’ 살고 있는지를 물으면 그렇다고도 못하겠습니다.
방향을 잡으려 애쓰고 느리더라도 여러 고민과 함께 계속 훈련하며
'체화(體化)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릴 뿐입니다.
잘하는 거 같다가도 또 흐트러지고 다시 세우기가 일상입니다.
이 정도면 기도하는 습관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해이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내 힘으로 무엇을 이루어냈다는 생각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심리 분야에서 유명한 엠 스콧 박사는 인생에서 '훈련만이 답'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의 값어치가 얼마나 큰지를 점점 알게 됩니다.
살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도 그것을 직접 살아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 말이죠.
'화도 내 본 사람이 적절하게 낼 줄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화를 그냥 쏟아낸다면, 주위 사람뿐 아니라 자신도 부정적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작정 참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화 같은 감정은 마냥 누르고만 있으면 언젠가 터져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는 거죠.
하지만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장하고 성숙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만이 답입니다!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의정부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