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2022. 9. 22. 오전 5: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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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말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하느님같이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니, 

완전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입니다. 

'미션 임임파서블'인 것이죠.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러한 목표를 우리에게 요구하셨을까요? 

이목표는 '원수를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보다 

훨씬 더 어려워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말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완벽해지려는 사람이있지요. 

그는 실수와 잘못을 철저히 배제하고 매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항상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됩니다.

사실 완벽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계속 실망하고, 비판적으로 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도 그렇게 대한다는 거죠. 

완벽주의자 옆에 있기 힘든 이유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엄청난 결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없는게 인간이었던 것이죠. 

무한하신 하느님을 유한한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인은 더욱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며 살았습니다.

성인은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기에 끊임없이 하느님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내려는 독립심과 주체성을 

본능으로 가지고 있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에게서만 온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그걸 

내 힘으로 얻고자 하는 바람이 여전히 또아리를 틉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도움이 없다면 사람이 완전해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에 

하느님의 도움이라는 조건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생략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걸 아버지 하느님과 의논하셨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따르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살아간다면 ‘완전’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주신 것이지요.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완전함과 영원한생명의 연관성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전제하고 있는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죠. 

여기에 하느님께 받은 자유의지가 더해진다면, 어떠한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라는 존재가 영원할 것이기에 '완전함'의 여정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완전이라는 단어는 하느님께만 속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가 하느님의 일부가 

된다면, 그 완전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감히 눈을 들어 오늘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나 자신을 내맡기며 그분과의 일치를 

바라봅니다.

우리도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의정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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