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낮음을 통한 영광의 자리

2022. 8. 31. 오전 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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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낮음을 통한 영광의 자리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본인보다 먼저 자녀들을 챙기시곤 

하셨습니다. 당신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누구보다 먼저 먹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늘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맛있는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기에 자녀들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음식보다 자녀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며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초대받은 다른 이들이 두리번거리며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8-11)


요즘 관심을 두고 읽고 있는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이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스노비즘'(속물주의)의 시대, 혹은 '스노보크라시'

(snobocracy, 속물 지배) 사회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스놉’(속물)이란 ‘배우지 못했거나 가난한’이라는 뜻 보다는, 잘 살기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내버린 사람들을 뜻하고, 속물 지배 사회란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윤리, 도덕, 

양심, 

체면, 상식 등을 무시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러한 속물의 삶이 정당화되고 그 삶을 쫓아가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김홍중, 「스노비즘과 윤리」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경제적 부, 성공, 권력,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분투하면서 

남들보다 높이 올라서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이들에게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성찰은 없고 성공을 위한 방편인 도구적 성찰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 끝자리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았을 때 오히려 영광스럽게 높여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속물적 근성이 아닌 겸손함의 자세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자칫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높은 자리에 대한 양보는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인간적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어 받아들일 때 실행이 가능합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호의에 보답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그러지 못하는 이들을 

초대하고, 기꺼이 낮은 자리로 향하는 자기 비움을 통해 영광스럽게 높여지는 것은 보이는 

세상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광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음식보다 보이지 않는 사랑 때문에 기꺼이 자녀에게 양보하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눈앞에 보이는 높은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이 갚아 주실 겸손의 낮은 

자리로 기꺼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선호 스테파노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리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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