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있는 빛과 어두움
의정부교구 신부님들은 지난달 예수성심대축일을 맞이하여 사제성화의 날을
가졌습니다.
성화(聖化)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보통이 아니기에, 하느님께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아버지, 제가 거룩합니까? 제가 당신을 닮아 창조되었다는데 그럼 저도 당신의
거룩함을 나눠 받았나요?'
여기서 거룩함의 뜻은 '성스럽고 위대하다.'입니다.
하느님이 그러하시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압니다.
그렇다면 사제도 성스러우면서 위대할까요?
여러분이 제게 이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렇게 답할 거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군요."
이어서 '사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왕직, 사제직, 예언직을 받았다.'며
물타기를 시전하겠죠.
그런데 사실 제 말이 단지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같은 직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스럽고 위대한 존재인가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존재 자체로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模像)이니 그 거룩함도 나누어 받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거룩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하느님이 우리 안에 넣어주신 거죠.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100% 거룩하시니, 우리도 100% 거룩한가요?'
그렇지 않지요.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거 같습니다.
'우리는 거룩하면서 거룩하지 않다.'
인간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 거룩함은 부족함과 한계로 자꾸
가려집니다.
마치 왕방울 다이아몬드에 먼지가 두껍게 껴서 그 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합니다.
바로 먼지를 닦아내는 것입니다.
어두우면 빛을 내기 위해 불을 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지를 닦고 불을 켜는 일이 우리네 영적 삶에서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 역시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순간입니다.
기적같이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일도 그 목적은 오직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전례(典禮)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키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겁니다.
지속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때처럼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그분께서 성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내버려 둔 채 길잃은 양 하나를 찾아 떠난 목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그 목자가 예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분께는 아버지의 자녀들을 찾으러 떠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점을 봅니다.
그리고 잃었던 양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이 너무나도 크기에, 목자는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죠.
그 기쁨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게 아니었던 겁니다.
너무나 큰 기쁨이었기에 진심으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스럽고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사랑을 이웃에게 전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읍시다!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 (의정부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