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
교회 공동체는 매년 11월을 '위령 성월'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달의 첫 주일에 우리는 '평신도 주일'을 다시 맞이했습니다.
'위령 성월'과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마음 한구석에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시(詩)가 떠오릅니다.
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이 시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추구하도록
일깨워 줍니다.
길지 않은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간 한 사제요, 그리스도인이었던
차동엽 신부는 자신의 저서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1권」에서
만약 한국의 상황이었다면 둘째 연과 셋째 연 사이에
'나는 일하누나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라고 한 연(聯)을 더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올 한 해는 너무나 분주하게, 아니 코로나19 감염증 상황에서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애쓰고 계신 모든 분들께 위안의 말씀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과부 두 사람을 만납니다.
사렙타의 과부는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1열왕 17,14)라고 전하는
예언자 엘리야의 말을 믿었고, 과연 그 말대로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를 먼저 생각한 그녀와 그녀의 아들에게 주님의
보호하심이 내린 것입니다.
한편,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그녀는 렙톤 두 닢, 자신이 가진 모두를 헌금함에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전 삶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로운 여정을 걸어가려는 우리에게,
우리 삶의 중심을 누구에게, 또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
(히브 9,28 참조)께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모아야겠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비지 않는 밀가루 단지와 마르지 않는 기름병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아멘.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 사목국장(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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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참으로 은혜로운 삶입니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주님이 계신 경당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을 홀로 두는 법이 없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주님을 찬미하는 삶. 화려하지 않아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 보시기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주님을 외롭게 하지는 않았는지 잠시 저를 돌아봅니다.
-사진설명:장은미 베르나디아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