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귀?
시골에서 연세 많으신 노인에게서 전해들은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에,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산골마을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이 장성하자 아버지는 큰마음을 먹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큰 장에 아들을
데리고 가기로 결심했다.
장이 서는 날 아침, 부자는 그곳으로 길을 떠났다.
산굽이를 몇 개 돌아 멀리 장터가 보이는 산마루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난생 처음 집을 떠난 아들은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 아버지, 저렇게 넓은 데가 있어요? 저기가 도대체 어디래요?
아버지: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이 바로 저 장터다.
아들: 어휴! 아버지, 저기가 저렇게 넓으면 봉화읍보다 더 크겠네요?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냐? 한양도 저기보단 작을 게다.
실제로 그 부자가 가려고 한 곳은 산골의 조그마한 면소재지였는데, 그곳은 평야지대의
그 어느 면보다도 작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것이 옳은 것처럼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
예수님은 왜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셨을까?
실제로 우리는 한양을 가본 사람보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논쟁에서 이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킨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분의 손은 놀라운 창조를 이루신 손이다.
진흙을 개어 사람의 형상을 만드신 손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은 진리에 귀 기울이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말들을 하지만 때론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닫고 허탈해 할 때가 많다.
진정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 말씀은 오로지 하느님 말씀이시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침묵한다면 오늘 복음에서의 그 사람처럼 귀먹은 벙어리인
셈이다.
때로는 내가 듣고 말해온 것으로부터 떠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행을 하는 것은, 또는 피정을 한다는 것은 '떠남'을 통해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행과 피정 중에도 세상을 떠나보내지못하고 있다.
어찌 할 것인가?
-권혁동 요한 신부(후곡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