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성인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며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그렇듯이 만족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구나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못한 코로나19의 세상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일상을 모두 정지시키거나
바꿔버렸습니다.
코로나19로 야기된 고통과 죽음, 낙심 그리고 혼돈에 빠져버린
세상 안에서 지난 2월 신자와 함께 하는 미사가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사태의 발생을 미처 대비하고 있지 못한 세상에 공포감과 함께
엄청난 혼란과 무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 삶의 진로를 뒤엎는 일이 일어나는 시간, 난세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다른이의 생명을 위해
두려웠지만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다가간 이들의 헌신과 사랑이
지금의 일상이나마 지켜낸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아니라 너와 우리를 살리는 몸짓을 선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옆집' 성인의 선함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삶 중심에 '옆집' 성인들의 선한 마음과 헌신, 생명 나눔의
부드러운 마음이 있었는가 반성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섬김과 나눔, 사랑과 용서의
왕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세상에
사랑과 용서, 평화와 겸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지막 날 심판의 기준도 이웃 사랑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가 누구로 보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벌을 받은 죄인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매달려 계시는 주님으로 보이는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겉모습만 본다면 무시하기 쉽습니다.
겉모습 너머로 그 사람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한다면
그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껍데기와 겉모습이 아니라 이웃의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잘것없는 '나'와 '너'가 하나가 될 때, 사랑과 용서,
평화와 겸손이 충만한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곳이 예수 그리스도 왕국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살아가며 잘 견뎌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한 이름 없는 신앙인의 기도를 나눕니다.
'주님,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부끄러운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하는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허영민 세례자 요한 신부 (의정부교구 야당 맑은연못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