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소유하면 다른 모든 아쉬움은 쉽게 견디어낸다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그분 안에 있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고 또한 끊임없이 내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나를 그분에게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분과 끊어질 수 없는 이 결합 속에서 내 마음은 너무도 행복하기에
내가 자장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에게서 떠나갔다 하더라도
결코 나를 슬프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에게서 모든 것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비록 거룩하게 생각되는 것이더라도 그 자체에 애착을 두지 않을 때
내 마음은 더욱 더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어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하느님을 찾았다는 것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모든 피조물을 포기하고 없는 것처럼 초연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가 없다.
만일 어떤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그 사람이 곁에 없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한탄한다면 그 영혼은 아직도 하느님을 올바르게 모르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께 다다르는데 피조물이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하느님만을 발견한 자는 피조물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하느님을 찾는 자는 어떠한 피조물에서도 그 감미로움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당신을 찾았기에
"오 나의 하느님이시여, 나는 결코 당신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아가3,4참조)
얼마나 많은 성인 성녀들이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기 위해
모든 피조물과의 교제를 끊고서 고독한 삶을 살기 시작했는지....!
에집트의 마리아는 자신의 조물주 하느님만을 찾아 얻기 이하여,
모든 피조물을 끊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조차 그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외롭고 황량한 사막에서 47년간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모든 피조물로부터 온전히 이탈하여 유일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자신과 다른 것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갖가지 고통을
주시면서 우리를 모든 피조물로부터 멀리 테어 놓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종들의 생애는 내.외적으로 많는 시련을 겪는
것으로 일관된다.
홀로 변함없이 지고하신 그분 외에는 그들이 아무것에도 애착하지 말고,
아무 것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느님의 사람들은 수많은 운하와도 같다.
이 운하를 통해 많은 물이 지나가고 선박들의 왕래도 가능하듯이,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총과 빛을 보내시고자 하신다.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이 선은 흔히 하느님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과의 친교는 큰 이득이기도 하며 한 영혼을
깊은 내적 생활에로 나아가게 해준다.
그러나 한 영혼이 하느님을 이미 찾았다면 이러한 성인에 대한 애착도
결국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
하느님의 현존을 누리기 위하여 거룩한 사람과의 친교를 끊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며 오히려 순수한 이득이 된다.
창검에 찔리운 예수님의 늑방은 흠숭할 상처이며, 이 상처를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그 어떤 인간이나 성인이 해 줄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의 하느님!
당신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숨어 계시나이다.
완전한 고요와 고독을 떠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지
않나이다.
나의 주님이시여,
모든 피조물로부터 나를 더욱 이탈하게 해 주시고 세상 재물에는
인연이 먼 아주 가난한 자가 되게 해 주소서!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