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는 예언자

2019. 2. 20. 오전 5: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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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되는 예언자


오늘 말씀 전례는 '예언자'라는 소재로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온갖 부정부패에 찌들어 멸망으로 향해 가는 사회에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회개를 외쳤지만 그 노력은 비난과 오해를 사게 되어 감옥에 갇히고 도망 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했지만 그 부르심 앞에서 핑계도 변명도 소용없었고 다만 사명 그 하나로 박해와 고난 속에 평생을 외롭게 걸어간 예언자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예레미야만이 아닌 모세, 이사야, 아모스, 호세야, 그리고 세례자 요한, 사도들도 똑같이 겪었던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마저도 고향과 동족들로부터 배척받는 모습을 보면 예언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빵을 좋아하고 기적을 좋아하며 명예와 권력을 좋아합니다. 시골 동네에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나왔다 하면 현수막을 걸어 환영합니다. 하다못해 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해도 현수막이 세워지며 동시에 동네의 자부심도 세웁니다.

이렇게 환영하는 것들을 예수님께서 광야의 유혹 중에 다 배척하셨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빵을 약속하지 않고 명예와 권력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말씀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전할 뿐입니다. 이 말씀을 먹고 받아들이기에 쓰기도 하고 시기도 하기 때문에 예언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지난주 복음의 연장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환영받습니다. 고향땅의 자부심을 세우고 큰 자랑거리가 될 것처럼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곧잘 하시던 기적도, 어떤 혜택도 없는 것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출신을 잘 안다는 자신감으로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그 빈정거림이 예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구원의 은총이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것을 언급하십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너무나 거북하고 불쾌한 나머지 예수님을 벼랑에 떨어뜨리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에게도 주어진 예언직은 이처럼 힘들 수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 악습, 폐단이 만연한 곳에 공정과 선의의 빛을 뻗쳐 나가기란 외롭고 힘들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촛불 하나가 온 방을 비추듯이, 하느님 말씀을 살아가고 전하는 우리의 삶이 빛이 되어 제대로 보게 해 주고 밝은 희망을 전해 준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우리의 소명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노승준 셰레자 요한 신부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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