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아닌 '삶'으로 증거하는 신앙인
30대 초반 어느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가벼운 우울증이 있어 간혹 주변 사람들을 당황 하게 하곤 합니다.
그냥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친구들과 식사를 하다가, 저녁에 TV를 보다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 주변의 반응은 다양 합니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요?", "내가 무슨 실수 했나?"
대부분 이렇게 '이유'를 물어봅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유치원 아이들은 다릅니다.
친구가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릴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그냥 함께 웁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울어줍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옆 사람의 눈물을 함께 해주고 있습니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그 순간, 그 공간에 함께 있어줌으로
인해 아픔을 함께할 때, 아픔은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어 마음을
적시게 됩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친구를 위해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그 아픔을
공유하고 넓게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는데,
그는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드레아는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수많은 기적들을 보고 들었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믿음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듯합니다.
그저 안 되는 '이유'만을 생각합니다.
마치 '실패'가 정답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통해 우리들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줍니다. 아이가 내어놓은 작은 빵과 물고기는 아마도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가방에 넣어줬던 것일 텐데도 아이는 몽땅 내어놓았습니다.
어린 아이의 내어놓음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그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겨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내어놓은 어린이의 곱디고운 마음으로
하늘나라의 신비를 열어주십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작은 정성이라도 그분께서는 우리들에게 차고 넘치도록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들에 나를 가둘 것인지,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인지 말입니다.
'이유'가 아닌 '삶'으로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히고,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고 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보는 하루되시길
바래봅니다.
-이정희 미카엘 신부 (청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