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2018. 7. 16. 오전 7: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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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사제로 서품된 후,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었는데, 친구들은 신자분들이 많은 곳에서 친근하게 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저는 아직 사제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친한 친구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점점 친구들이 사제인 친구로서 저를 위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사제로 본당에 부임하고 난 후, 친지들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여전히 한 명의 아들이자 손자였고, 조카이자 사촌오빠였습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했고,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모님만은 저를 '신부님'으로 호칭해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느 곳에서나 사제인 아들로 있어주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 마음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제도 고향이나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출신 본당에 부임하는 일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닌 성당에서 사제가 되어 신자들과 신앙을 나누는 일은, 예수님도 실패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뭐 반드시 실패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에 가셔서 놀라신 것은 그들의 마음이 너무 완고했기 때문입니다. 고향이나 집안이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과 성숙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권위를 내세우려 하거나 잘 아는 척을 하는 것은 관계를 망치는 일입니다. 사제도 신자도 서로를 그렇게 바라봐 주지 않는다면, 어떤 사목 임지에서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성장과 성숙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완고한 사람이 아니라, 유연하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하지 못했던 일을, 우리가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노경득 블라시오 신부 (한마음청소년수련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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