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라, 나다

2017. 8. 28. 오전 6: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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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라, 나다

 

 

한 갓난 아이가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버려졌습니다. 배고픔과 외로움에 울부짖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 마을에 퍼졌고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버려진 아기를 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이쿠, 누가 저런 갓난아기를 이런 길가에 버렸어?", "불쌍해라.", "어떡하죠?", "아이 부모를 찾을 수 없는 건가요?". 아이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고아원 시설이 있는 중심지까지도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 갓난아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마을에서 젖동냥을 하며 이 갓난아이를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군가는 키워야하는 상황인데 선뜻 나서서 자신이 이 아기를 키우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서로 눈치만을 바라 보고 있었죠. 마을에서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무언의 눈치를 줘봤지만 다들 딴청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 무렵 한 구석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키울께요." 일제히 사람들이 눈을 돌렸습니다. 말을 꺼낸 사람은 그 마을의 미혼모였습니다. 그녀는 홀로 이미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삯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던 가난한 미혼모였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갓난아기가 가난한 미혼모의 보살핌으로 나중에 커서 위대한 위인이나 사업가가 되었다'는 등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볼 수 있는 볼리비아에 있으면서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처럼 소외받고 힘없는 이들에게 공감하고 다가가는 사람들은 그 역시 사회에서 소외받고 힘없는 약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최근 작고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께서도 평생 외면당하고 모멸받으신 삶을 마감하시면서 당신이 가지셨던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미담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지요. 동시에 저 위쪽에서는 자기 밥그릇 싸움 이야기들만이 들려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인간적으로 일어날수 없는 일이기에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까지 합니다. 그렇게 두려워 떨고있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기적의 한가운데로 초대하십니다. 그 기적은 주님이신 예수님만의 권한이 아닌 우리의 역할안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오너라." (마태 14,29) 이것저것 계산하고 생각하고 따져보지 말고 주님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닌 제자로서 기적의 주체자가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오너라". 기적이란 로또에 당첨이 되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 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짝사랑만 하던 이가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기적이고, 부모가 사춘기 자녀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기적이고, 가족이 함께 모여 화내지 않고 밥한끼 먹는 것이 기적이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함께 공감해주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기적의 시작은 공감과 용기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는 어마어마한 기적에 우리들을 초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마태 14,27), "오너라."(마태 14,29) -전형석 루카 신부 (해외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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