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 병동과 소아과 진료실 사이
파주병원 완화(호스피스) 병동 옆에는 소아과 진료실이 있다.
완화 병동을 갈 때마다 항상 소아과 진료실을 지나게 된다.
한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쳤었는데, 어느 날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쪽이 생명을 시작하는 곳이라면, 한쪽은 생명의 마침을 준비하는 곳이다.
소아과 병동을 지나면서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밝게 웃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를 엄마 뒤에 숨어 조심스레 훔쳐보는
아이들도, 주삿바늘을 보고 자지러지듯 울며 도망치는 아이들도
자상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하지만, 몇 걸음 지나 완화 병동에 들어서면, 생의 마지막 시간을 힘겹게
보내는 이들 앞에서 나는 바로 직전의 미소는 잊고,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며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그들에게 인사하게 된다.
그곳에는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거나, 죽음 앞에서 절망감에 두려워
어쩔 줄을 몰라 하거나,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간의 긴 병원생활에 지쳐 이도저도 빨리 다 끝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도 계신다.
물론 환우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때도 있지만, 병동 자체 안에
있는 공기는 그 안의 모두에게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무튼 우연히 그렇게 자리 잡았겠지만,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이 두 곳이
하필 왜 이렇게 가까이 있어 나에게 희망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요구할까
싶었다.
사실 나는 하루하루를 그냥 주어지는 것에 붙들려 닥치는 대로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
하루를 그냥 지친 채로 마쳐 잠이 들거나, 잠이 덜 깬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많았다.
이런 나에게 그 잠시의 복잡함은 이 마침과 시작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그 복도를 지날 때마다 마침과 시작 사이를 드나들고 있는 모습
그대로 말이다.
이러고 보니 오늘 복음 말씀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갑작스레 찾아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으라며 우리의 마침을 준비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리고 둘째 독서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대낮에 행동하듯, 품위 있게
살면서 가까이 다가온 구원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초대로 여겨진다.
첫째 독서는 칼과 창의 전쟁을 없애고 메시아와 함께 살아갈 영원한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으니, 한 해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 대림 첫주일에, 교회가 모든 신앙인들에게 보여주려는 청사진이며
초대인 듯하다.
교회의 시간도 마침표를 찍고 새롭게 시작한다.
더 이상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
나의 마침이 멀리 있다 여기고 시작의 새로움을 잊어버린 채로 하루 이틀
지내다가는, 기쁨도 의미도 없는 매일을 살다가 막상 언젠지 모를 끝에
가서는 화들짝 놀라며 망연자실하겠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준비해야 비로소 마지막의 준비가 되겠기 때문이다.
하루를 잘 마치고 새 하루를 잘 시작해야겠다.
대림. 메시아를 기다리며 어제와 다른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지금, 마침과
시작이라는 시간 사이에 점을 찍으며 찾아오실 메시아와 함께 살아갈 준비의
새로운 결심을 해 본다.
-권찬길 세례자 요한 신부(금촌2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