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검사
고교 시절, 적성 검사에서 제 예상 직업은 '농부'였습니다.
예상 수치도 무려 "91%"가 나와서 그 당시 저는 몹시 창피하고 못마땅해서
결과지를 친구들 몰래 버렸습니다.
그런데 30년이 흐른 지금 저는 틈만 나면 텃밭에 나가 농사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작물과 풀(잡초)도 구별하지 못해서 애를 먹기도 했고,
무조건 물을 많이 주면 좋은 줄 알았다가 토마토 줄기가 물러져서 할 수 없이
뽑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나름 성공한 것도 있었습니다.
새들을 막아가며 애지중지 보살 핀 밭에서 두 광주리 가득 땅콩을 얻었을 때는
'누구한테 자랑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고, 결국 주교님께 조금 상납하고
나머지는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보냈습니다.
제 부족한 경험 중에서 으뜸은 마늘 입니다.
가을에 심어 두었던 씨 마늘이 겨울을 나고 새순을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볼 때면 저절로 감탄과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그렇게 강인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오감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 흉내만 내고 있는 초보 농사꾼이지만 밭벼와 보리 재배까지
해 봤으니 청소년기에 했던 적성검사가 제법 정확한 것 같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다 보면 밭에는 크고 작은 생명들이 찾아옵니다.
수많은 곤충과 지렁이, 개구리, 두더지, 뱀까지…. 그런 밭에서 난 열매는
크기가 작아도 맛이 좋고, 아주 단단해서 아무 곳에나 던져놓아도 잘 썩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기 농사를 짓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묵묵히 생명 농업을 지켜온 '가톨릭 농민회' 농부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선택은 바르지만 고단한 길입니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알아주는 이 없어 외롭고, 오해와 무시를 당하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긴 여름의 끝에 서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과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
모두 둘러앉아 생기 넘치는 밥을 나눠 먹는 하느님 나라가 방방곡곡에
임하기를 희망합니다.
-김성수 베네딕토 신부(문화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