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미암아 살 것"
이번 주의 복음은 생명의 빵에 관한 네 번째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상식에 근거한 유다인들 사이에 서로 말다툼을 일으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말씀이기도 하고,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다인은 물론이고, 그리고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성체)과 그분의 말씀을 수용하지 않은 이들은 더 이상
예수님 함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6장 25절 이하를 읽을 때면 항상 드는 느낌이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기에 마치 한 이야기 반복해서 하고,
또 비슷한 이야기를 돌려서 이야기하는가 라는 느낌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설명이지만, 아마 50절까지의 이야기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대한 가파르나움 회당에서의 예수님의 설명이라면, 52절부터는
똑같은 요한복음의 사상을 가지고 후대에 재해석해서 너무도 중요한
성체성사에 관한 설명을 한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육신의 살과 피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 즉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성체성사의 의미로 넘어갑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의 예수님 전체의 모습을 가리키는 의미에서의
살과 피입니다.
성체와 성혈이 참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란 말인가? 라는 물음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보다 근본적으로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면서도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 말씀이 나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말씀이 아니기를 기도 해 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드러나지 않고,
나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성체를 영해도 우리는 예수님
곁을 떠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표현대로라면 예수님 안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 이하를 주의 깊게 본다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라는 표현이 네 번 반복됩니다.
이 마지막은, 살아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신앙안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 이미 우리 안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 라는 것은, 신앙을 갖고 세상에 사는 지금의
이 삶이 죽은 다음에 부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그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따라서 이 세상에서부터 죽은 다음에
부활할 때의 그 삶을 그대로 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과연, 죽음도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는 삶일 것입니다.
죽음도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나에게,
도대체 두렵고 떨리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도 바오로의 위대한 고백을 떠올려 봅니다(로마 8,35-39).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워주신 생명의 성체성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나의 신앙이 거짓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성체 안의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김도연 야곱 신부(해외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