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5월의 숲에 계신 푸른 어머니

2007. 5. 18. 오후 3:43:16

글자
 

오월이 다 가기 전에 많은 본당들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하나로 이 오월의 은총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성모 성월에


  싱그러운 5월의 숲에 계신 푸른 어머니

  저희는 오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목마른 나무들이 되어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크고 작은 근심으로 초췌해진 당신 자녀들을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굽어 보시는 어머니

  나무속을 흐르는 수액처럼

  저희의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은총의 시간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고마워하며

  5월엔 고향에 돌아온 듯

  어머니의 이름을 부릅니다.

 

  어둡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갈수록

  어머니의 하늘빛 평화를 갈구하는

  이 땅의 자녀들에게

  항상 집이 되어 주시는 거룩한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면 어느새

  저희의 기쁨은 꽃이 되고

  슬픔은 잎새가 되고

  기도는 향기가 되어 하늘로 오릅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들과도

  더 깊이 하나 되지 못하고

  늘 바쁜 것을 핑계로

  더 깊이 깨어 살지 못했던

  저희의 게으름과 불충실을 용서하십시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저희의 오만과 편견으로 그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죄를 짓고도 울 줄 모르는

  저희의 무딘 마음을

  은혜로운 눈물로 적셔 주시는 어머니

  저희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의 돌덩이들을

  진실한 참회의 기도로 깨뜨려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항상 저희를 예수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첫걸음을 잘못 떼어 방황하지 않도록

  선과 진리의 길이 외롭고 괴롭더라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저희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마음의 창에 때처럼 끼여 있는 미움들은

  깨끗이 닦아내고

  용서와 화해만이 승리하는 사랑의 항해를

  길이신 예수와 함께 시작하게 해주십시오

  늘 성급하게 살아와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인내를 배우는

  기다림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늘 믿음이 부족해서

  쉽게 절망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희망과 감사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숲과 호수에 출렁이는 은총의 햇빛처럼

  어머니와 저희가 하나되는 이 오월엔

  지혜의 푸른 불꽃을 가슴에 지닌

  한 그루 기도나무가 되겠습니다.

 

  썩지 않은 겸손의 소금으로

  고통도 하얗게 녹여 버리는

  멀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길을

  저희도 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걷겠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님들도 잘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걱정하시며 어머니를 위해 또 제자들을 위해 성모님과 우리를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로 맺어주셨습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또 가장 힘센 사랑의 모습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허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초조해 하는 제자들 곁에서,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기의 아드님을 잃은 비탄과 슬픔속에서도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에 성모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분의 각별한 배려를 감사하며 그분을 교회 공동체의 어머니로서,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과 박해 속에서도 위로받고 피할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로서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요즘 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미래 생활의 불안과 그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그로 인해 깨어지는 가정의 아늑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고로 인해 가정을 떠나는 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머니가 떠나간 가정이 얼마나 불행하고 또 그 자녀들의 삶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가정에서 어머니의 자리는 그처럼 소중합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의 자리입니다.


 


교회 안에서 마리아님의 어머니로서의 고유한 자리, 힘들고 지친 자녀들이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어머니의 아늑한 자리는 어찌보면 인간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시는 예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그 수 많은 냉담자들과 이교도들을 가톨릭 교회의 품안으로 끌어 오는 힘은 성모님에게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드님을 키우시며 온갖 고통을 감수하셨을 것입니다. 생활고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깊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흔들리는 가정이 있으면 우리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위로해 주실 성모님께 그 가족들을 앞장서 데리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성모님이 허락하신 그 소중한 가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하며 오월의 이 아름다운 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겠지?

 

          - 이해인, “선물의 집”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오늘의 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