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12호>논단4-이슬람교와 구원론/이원삼 교수

2002. 4. 25. 오후 4:40:46

글자

논단4

 

이슬람교와 구원론 - 이원삼 교수

 

1. 서론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린 이슬람은 그의 연구 결과가 아닌 알라(All h, 하느님)에게서 나온 명칭이라고 무슬림(이슬람교 신자)들은 주장한다. 꾸란(Quran)1)에서 말하길 “오늘 너희를 위해 너희의 종교를 완성했고 나의 은혜가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였으며 이슬람을 너희의 신앙으로 만족케 하였도다”(꾸란 5,3). 말하자면 이슬람교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모든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동일한 말씀과 지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으며 우리에게 계시되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자손들 그리고 모세와 예수와 다른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으며 하느님에게 복종한다”(3,84).

그리고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것은 포괄적이고 완전하며 최종적 형태의 이슬람교이다. 인간의 지혜는 유한하기에 인간에게 진리의 근원과 인생의 규범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과학이란 없다. 인간 앞에 개방되어 있는 확실한 지식의 원천이란 오직 신의 지도가 있을 뿐이며 이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생존할 때부터 있어 왔다. 알라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인류에게 하느님의 지도를 계시한 것이며, 이제까지 계시된 모든 종교는 하나였으니 곧 이슬람교인 것이다.

알라의 예언자들은 각각 맡은 일을 하고자 모든 나라와 사회에 계속 나타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간은 알라의 계시를 삭제하거나 덧붙임으로써 변질시켰으며, 그럴 때마다 새 예언자가 새로운 계시를 가지고 나왔다. 이렇게 하면서 인류는 유년기에서 성년기에 도달하여 실제로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되자 분파적 계시가 아닌 완전하고 최종적 계시가 전 인류에게 내려진 것이다.

곧 종전의 모든 계시를 요약하여 통일된 결론을 내린 계시가 바로 이슬람교이고 이 계시를 간직한 것이 꾸란 경전이며 그 예언자가 인류의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이다. 이와 같이 아담을 비롯하여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 이르는 모든 예언자들은 무슬림의 예언자들이며, 이들 예언자 가운데 무함마드가 최종적 예언자이다. 또한 모든 성경은 무슬림의 성경이지만 지금 무슬림이 꾸란만 추종하는 이유는 꾸란이 변질되지 않은 본래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생존한 이래 올바른 종교를 믿어온 사람들이 지켜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슬람교의 구원관은 그리스도교와 차이가 나며 이러한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창조, 타락, 구원에 관한 부분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2. 창조

 

1) 아담의 창조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인류의 첫 조상이며 첫 부부라고 설명한다. 두 경전의 공통점은 많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동산에서 죄를 짓고 자신의 벌거벗음을 알게 되고 동산에서 쫓겨나 땅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창조에 대한 두 경전의 접근 방법과 정보의 분량, 목적은 다르다.

꾸란에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꾸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으며, 도덕적 교훈에 따라 문맥에 삽입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믿음과 행위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또한 하와의 창조는 아담의 창조와 직접 관련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를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증거로 사용하며 그 징표로서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같은 방법으로 인간을 번식시키셨다는 것을 말한다. 꾸란의 문체와 형식을 살펴보면, 비록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꾸란의 많은 부분에서 언급되어도 그 문체는 성경에서처럼 자세하게 아담과 하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주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문장은 보통 ‘wa idh’(그리고 기억하라, 언제)로 시작된다. 동사의 생략은 꾸란의 일반적 형식이다. 이 형식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기술하는 문맥에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유추하기 위하여 기술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꾸란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성경보다 훨씬 덜 자세하며 뱀, 아담의 갈비, 하와의 특별한 징벌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꾸란에서 아담은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지혜를 받았으며 위대한 존경도 받는다. 하느님은 아담이 땅 위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아담에게 만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 이 지혜로 아담은 천사들보다 더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알라는 아담의 회개를 받아 주셨고 그를 예언자로 세우셨다. 아담은 그의 후손들도 존경하였다”(꾸란 17,70). 땅에서 창조된 존재이지만 아담은 하느님이 불어 넣어주신 영을 지녔고 하느님에게서 만물의 이름을 배웠다. 아담은 천사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더 뛰어났기 때문에 알라는 천사들에게 아담 앞에 절하도록 명령하셨다. 꾸란은 아담이 지혜의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알라를 아는 자가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다”(35,28). “알라는 지혜 있는 자를 더 높이신다”(58,11).

또한 꾸란에서 아담이 아버지 없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동정녀에게서 출생한 예수의 신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반대 논제로 사용한다(3,59 참조). 이것은 예수를 신적 존재로 인정한다면 유일신을 믿는 무슬림의 가장 근본적 신앙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흙으로부터 창조’ 구절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최소한 구원에 대한 논쟁으로 6번이나 사용되었으며 이슬람교의 기본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알라)가 너희를 그것(흙)에서 창조하였고 너희를 그곳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너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20,55).2) 인간과 땅의 관계는 많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인간과 땅의 친화력을 강화하고 땅에 대한 인류의 책임과 의존성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 하와의 창조

꾸란에서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로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는 발견할 수 없고, 하느님이 한 영혼과 ‘그것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다고 전한다. 알라는 그것의 짝을 창조하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땅위의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퍼뜨리셨다. ‘from it’는 아랍어로 모호한 표현이며 논쟁거리로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가지 해석은 정확한 부분에 대한 규정 없이 ‘영혼의 일부분’으로, 또 다른 해석은 ‘같은 종류의’로 해석하고 있다. 알라가 인간을 한 쌍으로 창조하신 목적은 그들이 서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7,189; 30,21 참조). 그리고 사실 평안함의 요구는 서로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다(2,187 참조).

꾸란에서 여자는 첫 번째 동산에서 타락의 원인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마지막 동산에서 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한 무슬림은 여자가 없는 파라다이스는 침울하고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를 창조한 목적은 안식이며, 이것이 첫 동산에서, 지금 세상에서, 그리고 마지막 파라다이스에서 누려야 할 꾸란의 가르침이다.

꾸란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들이 함께 파라다이스에서 살며(2,35 외 참조), 서로 안식을 주었고,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파멸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 이슬람교에서 안식은 결혼을 통해 얻는 것이다. 결혼은 또한 이슬람교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꾸란에서 알라는 누구든지 나의 길을 피하는 사람들은 내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결코 종교적 독신과 독신주의를 장려하지 않으며 지속될 수 없는 인간 날조로 묘사한다(57,27 참조). 마찬가지로 ‘하디스’(  adith, 무함마드의 언행록)에서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한다. 아담은 무슬림에게 결혼에 대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남자 여자 모두 서로의 배우자를 잃으면 재혼이 가능하다.

꾸란에서 여자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어머니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가르치기 위해 여러 차례 언급된다(31,14-15; 46,15-18 참조). 한 여성이 예언자에게 “남자는 전쟁에 나가면 많은 보상이 있는데 여자에게는 무슨 보상이 있습니까?”라고 항변했을 때 예언자는 “여자가 임신할 때 철야 기도와 단식 정성을 드린 사람에게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여자가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을 이겨내는 데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이 주시는 보상이 크다. 그리고 여자가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것도 한 영혼의 생명을 지키는 데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함마드의 말씀에 따르면 출산 중 사망한 여자는 순교자다. 꾸란은 성경에서처럼 여자의 출산이 벌이라고 언급하지 않으며, 남편이 아내를 다스려야 하는 것도 벌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어야 할 운명도 벌이라고 하지 않으며 땅도 하와도 벌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3. 타락

 

1) 타락의 원인

꾸란에서 인간은 태초부터 땅에서 살았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능력을 지녔으며 선악을 선택하는 자유를 지녔음을 명확하게 언급한다. 그래서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꾸란 2,30; 76,3; 90,10; 91,8-10 참조).

꾸란에서 타락의 원인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동시에 속였기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담이 하느님의 계명을 잊어버리고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꾸란에서 하와는 타락의 원인이 아니고, 뱀은 나오지 않지만 사탄은 등장하며 사탄이 영생과 하느님과 같은 지혜와 영원한 주권을 약속하며 유혹한다. 꾸란은 심판 날에 사탄의 약속이 거짓이었음을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14,22 참조).

 

2) 죄의 개념

샤리아(Shar 첺h, 이슬람법)에서 말하는 죄의 정의는 알라가 금지하신 것을 이행, 곧 불법적 행동의 이행이거나 알라의 명령 거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행함으로써 또는 행하지 않음으로써 죄를 짓는 이 두 가지는 공공연히 샤리아에서 규정한 명령 위반을 의미한다. 곧 무슬림의 모든 생활을 규정하는 법인 샤리아를 이행함으로써 인간은 알라와 관계를 갖게 되며 알라의 의지에 따르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 ‘알라의 의지’는 아랍어로 ‘순나 툴라’(sunnah All h)3)로 설명되는데 이것은 알라가 우주를 다스리는 방법, 운행, 관습을 의미한다. 곧, 알라의 의지란 삶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시키는 ‘자연 법칙’이며, 인간은 평안하고 질서 있는 삶을 위해서 그 법칙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꾸란의 표현에 따르면 “알라의 뜻에 귀의하는 것”이며 아랍어로 이슬람이다. 여기서 ‘귀의(이슬람)’의 뜻은 알라가 세상에 펼치신 법칙에 복종,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하느님 중심적 신앙관에서 보는 포괄적 개념이다.

꾸란에서 인간과 알라의 관계는 ‘종과 주’라는 두 단어에서 그 개념이 잘 나타난다. 알라는 주인이시고, 인간은 그분의 종이다. 인간이 알라를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을 ‘이바다’(쳃b  dah)라 하는데, 이 단어는 ‘아브드’(첺bd)의 추상 명사이다. 의례 규범에 해당하는 ‘알 이바다’(al-쳃bdah)의 정의는 복종, 순종이다. 샤리아의 정의 역시 언어의 정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곧 알라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추종함으로써, 모든 일을 그분에게 위탁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밖에 다른 명령에도 복종하고, 순종하며, 그 위력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알라는 그 종들에게 외형적 복종이나 순종을 원하시지 않으며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복종을 원하신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은 알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자들은 의례 규범을 통한 경배를 할 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붙였다. 알라에게 복종할 때에는 그분에 대한 사랑이 포함되어야 한다. 인간의 복종에 증오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분을 숭배하는 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자식이나 친구, 다른 것들을 알라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분에게 복종하거나 그분을 숭배할 수도 없다.

위의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으로 알라를 경배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러나 알라는 그 무엇보다 당신의 종을 사랑하신다. 이것은 그분을 만물의 주인으로 섬기고 복종하는 무슬림에게 큰 은혜이다. “그분은 연기로 된 하늘을 펼치시고 하늘과 땅을 향하여 ‘좋아하든 안 하든 너희들은 모두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답하길 순종하여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꾸란 1,11). 이 구절은 우주 만물이 알라의 창조품으로서 정해진 규칙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곧 우주 만물은 자유 재량권이 없다. 이에 비해 인간은 알라에게 순종하거나 거역할 수 있는 의지 또는 자유 재량권을 부여받았다. 이것도 인간에게 큰 은혜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의지를 따라야 할 인간이 부정하고 무관심하여 세상을 부패시키는 죄를 짓는다고 꾸란은 전한다. 꾸란은 선악 창조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지 않으나, 알라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에게 어떤 능력을 주시어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게 하셨다고 전한다. 곧,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잘못 사용하여 발생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이는 창조 때 인간이 선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인 자유 의지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이슬람교는 인간에게 범죄 능력이 잠재되어 있지만 이 능력이 경건함이나 선의 능력보다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선의 잠재력이 아니라 죄의 잠재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순수성에 외부적 요인이 더해지게 되어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지만(로마 5,12-21 참조), 이슬람교에서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죄의 잠재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3) 죄와 인간 본성

이슬람교에서 죄의 근거는 “인간은 연약하게 창조되었다.”(꾸란 4,28)는 데 있다고 언급하는데,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인간의 도덕적 연약함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 능력을 사용할 때 올바른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에게 내재된 연약함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꾸란 90장 4절은 알라는 인간이 시련을 겪도록 창조하셨다고 말하며, 84장 6절은 알라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이슬람교에서 인간의 원죄 개념은 없지만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연약함 때문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이후 그 결과를 비교해 보면 죄에 대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 이후 아담은 수치감과 죄의식을 느꼈고, 본래의 거처에서 쫓겨나며, 육체적 죽음을 겪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두 종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그 공통점을 제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슬람교는 그리스도교와 분명히 다른 점을 드러낸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인간 본성의 변질에 관한 문제이다. 이슬람교에 따르면 아담의 행위는 망각으로 일어난 실수일 뿐이며 알라의 창조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꾸란에는 아담의 범죄 결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셋째, 이슬람교는 아담이 지은 죄의 전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죄 없는 자유스러운 상태로 태어나므로 처음 상태는 마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공책과 같은 선의 상태이기에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한 죄에 구속되지 않으며, 자신의 계획과 책임으로 행할 수 있는 자유 의지, 곧 죄에 구속되지 않는 행동의 자유를 하느님에게서 받았기에 해방된 영혼과 정신 세계를 누릴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의 대리자일 수 있으며, 선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인간 개개인에게 있을 뿐이다. 곧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죄 없이 탄생하며,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단지 외적 환경 요소에 따른 것이다.

넷째, 범죄 후 인간에게 한 약속의 차이이다. 꾸란에서 알라는 첫 인간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신 후 그들에게 복음을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슬람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구원자가 아니라 신의 명령을 전달하고 불순종의 결말을 경고해 줄 교사나 안내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4) 죄의 회개

이와 같이 이슬람교에서는 원죄의 개념이 없으므로 개인이 각자 자업자득한 죄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알라의 첫 명령을 거스른 이후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였다. “주님! 저희가 저희 스스로 욕되게 하였으니 당신께서 저희를 용서하여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잃은 자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꾸란 7,23)라고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알라의 관용과 자비를 청하자 알라는 아담과 하와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푸셨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행위가 바로 용서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별다른 해결책은 필요 없다.

꾸란은 타락의 징벌로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금지된 나무의 과일을 먹는다면 그들은 범죄자가 되고 사탄에게 동산을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한다(2,35; 20,117 참조). 태초의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땅에서 사는 것이었다(2,30 참조). 그리고 알라는 사탄이 인간을 속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과 알라에게 대적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며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사탄에게 대항할 수 있는 첫 경험을 주신 것이다. 그들은 이 시험에 실패하여 동산을 떠나야 했지만 곧 죄를 뉘우침으로써 알라는 그들을 용서하셨다(2,37; 7,23 참조). 꾸란에서 그들의 회개는 그 이상의 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아담은 알라에게 인도 받은 첫 번째 예언자로 선택되었다(3,33 참조). 그러므로 그는 이슬람교의 여러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꾸란에서 알라는 아담에게 회개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아담은 알라의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알라는 아담에게 향한 노여움을 푸셨다. 오! 알라는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이시다(2,37 참조).

사실 아담과 하와가 사용했던 회개의 기도는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해한 후 반복한 기도였다(28,46 참조). 모세의 회개도 받아들여졌다. 이슬람교에서 회개의 문은 죽음 직전까지 항상 열려 있다. 알라는 어떤 회개라도 받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실제로 알라는 이렇게 약속하신다. “회개하고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을 선으로 변화시킬 것이다”(22,70).

그러므로 아담에게 열려 있었던 회개의 경로는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원죄는 아담의 후손에게 지속되어 예수의 십자가만을 통해서 구원된다고 한다. 그러나 꾸란에서 아담의 죄는 다른 사람의 죄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의 회개를 통해서 구제될 수 있다. “영혼은 다른 사람의 짐을 부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노력에 따라 판단되며, 그의 노력은 세밀히 조사되고 그 노력에 대해 보상받은 것이다”(53, 38-41).

꾸란에서 인간은 태초부터 땅에서 살았고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능력과 선악을 선택하는 자유를 지녔음을 명확하게 언급한다. 그래서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2,30; 76,3; 90,10; 91,8-10 참조).

꾸란 40장 41절에서 단 한 번 나오는 ‘나자와’(Naj wah: 구원)라는 단어는 무슬림의 신학 저술에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슬람교에는 원죄의 개념이 성립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의미도 찾아보기 힘들다. 죄가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궁극적 의미에서 이슬람교의 구원도 죄로부터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교의 대속적 구원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교의 구원은 한마디로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행할 때에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은 ‘죄의 용서를 구함’을 의미하는 ‘이스티그파르’(Istighf r)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사용한다. 이 용어는 “더러움에서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것으로 덮는다.”라는 뜻의 ‘가프르’(ghafr)에서 파생된 것으로 ‘죄로부터 보호함’, 더 나아가 ‘죄의 형벌로부터 보호함’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스티그파르’는 단지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죄에서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곧, 무슬림은 알라의 보호로써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기에 그들은 ‘이스티그파르’로써 하느님의 보호를 구하는 것이다.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하루에 백 번씩 ‘이스티그파르’를 행함으로써 알라의 의지에 위배되지 않도록 기도하며, 매순간 알라의 보호를 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꾸란에서 가장 무거운 죄, 곧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고 규정짓는 ‘쉬르크’(Shirk)는 ‘타우히드’(Tau  d)4)에 반대되는 것으로 유일신에게 다른 신을 연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무엇도 알라에 비유하지 아니하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라 외에 다른 것들을 주로 섬기지 아니할 것이라”(3,63). 이외에 꾸란 25장 43절에는 맹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것도 ‘쉬르크’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신의 유일성을 믿는 참된 복종이란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기인된 것이지, 하느님의 명령 외에 다른 것이나 자신의 욕망에 복종하는 것은 실제로 쉬르크라는 것이다.

 

4. 구원

 

이슬람교에서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자들은 축복과 아름다운 최후의 거처가 그들의 것이라.”(꾸란 13,29) 라고 답한다. 곧 하느님을 믿고 선행을 하는 것이 구원을 위한 포괄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슬람교란 주님의 방법론이다. 곧 인간을 창조하고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시고, 생의 길 그리고 믿음과 행동의 방법론을 보여 주시는 알라의 생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방법론은 현세와 내세에서 인류의 행복을 실천하는 데 보호자이고 또한 현세에서 인류가 발전해 나가는 데 보호자인 것이다.

만일 인간이 이 땅에 알라의 대리자 역할로 창조되었고 그 대리자의 역할로서 알라의 계시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종교는 인간 행동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 곧 알라의 종교를 바로 믿고 바로 행동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아무런 갈등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말속에 중요 요소가 들어 있다.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 아무런 갈등 없이 편안히 지내기 위해서 무슬림은 반드시 종교 지식과 그 행동 실천을 찾아 연구해야 한다. 곧 믿는 만큼 반드시 행동해야 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지식만 있고 행동이 없거나 반대로 행동만 있고 지식이 없는 경우 사회 발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필수 불가결의 요소로 이슬람교는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의 지식은 능력 내에서 모든 무슬림이 배워야 할 의무이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지워 주시지 않으셨다”(2,286).

꾸란에서 지식 또는 학문의 범위는 광범위하며 절대적이다. 곧 인간 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말한다. 신학, 인문학, 수학, 물리학, 화학, 수사학 등등. 단,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유용한 학문만을 말한다. 반면에 실천적 면에서 행위, 곧 학문의 실천은 믿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믿음이란 바로 천국에 대한 믿음, 계시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을 갖고 선을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축복의 천국이 있다”(31,8).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한 자, 그들의 주님이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10,9). 반드시 옳은 일의 실천이어야 하고 그 행동이 개인이나 사회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는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알라의 종교이며 믿음과 행동의 종교이다. 믿음은 신조를 구성하고 이 신조는 이슬람법 이행의 원리이며 원천이다. 또한 행동은 샤리아를 구성한다. 나무와 열매, 원인과 결과, 서론과 결론이 서로 관련되듯이 믿음과 행동 또는 신조와 이슬람법도 그와 같은 상호 연관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는 많은 구절들을 꾸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이들에게 소식을 전할 지어다. 그들을 위해 천국이 있고 그 밑에는 강물이 흐르리라”(2,25).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모든 남녀에게 우리는 행복한 삶을 부여할 것이며 또한 우리는 그들이 행한 선에 대하여 최상의 것으로 보상하리라”(16,97). “그러나 실제로 믿음을 갖고 선행을 하는 그들을 위해 알라께서 사랑을 베푸시리라”(19,96).

 

5. 결론

 

이와 같이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 종교이고 무슬림 생애의 영원한 법이다. 신앙심은 예절과 선행, 능동적 문화 행동과 인간성의 근원이다. 신앙심은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므로, 이슬람교에서 신앙심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서 가장 기본적 욕구의 수락이고, 모든 시대와 상황으로부터 해방이다. 신앙심은 깨끗한 정신, 굳건한 마음, 풍부한 문화 등으로 점점 깊어진다. 또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며 이상과 최선으로 이끌어 간다.

알라는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이성을 주셨고 축복을 내리셨다. 예언자와 사도들을 인간들에게 보내시어 완전함으로 인도하셨고, 인간이 알라에게 복종할 것인지 아닌지 선택의 재량도 인간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기쁨과 만족으로 복종하는 것이 곧 이슬람교이다. 알라는 모든 인간들의 행동과 생의 후원자이시다. 인간을 인도하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샤리아는 모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완벽한 것으로서 무슬림은 이 샤리아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구원받는다.

이슬람교는 정교 일치로써 믿음과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이슬람교는 단순히 종교적 신앙 체계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생활 전반을 포함하는 생활 양식이며, 고도의 복합적 문화로서 종교와 세속 쌍방을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이다. 곧 이슬람법과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둘의 관계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 영역이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곧 믿음은 이슬람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슬람법은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법의 역할은 다른 문화권의 실정법보다 더 광범위하며 법인 동시에 믿음이며 사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샤리아는 무슬림의 모든 언행을 규범화하고 있어 이슬람권에서 이 샤리아가 사회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슬람 법학은 이슬람교 학문의 최고봉이 되었으며 이슬람교 초기부터 발전되고 정리되어 이슬람 규범을 도출하는 데 응용되었다. 이 학문이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타프시르’(tafs r, 꾸란 해설)와 ‘하디스’ 연구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학문은 오늘날에도 비단 샤리아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이슬람 문화 연구 종사자들에게도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모든 학문의 근원이 꾸란과 하디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샤리아의 현상을 법학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심리학 등 다른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도 각 학문의 대상으로 할 수 있고, 모든 학문에서 샤리아의 방법론들이 응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법은 다른 국가들의 실정법과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56개국 이슬람교 문화권의 구원관과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슬람법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샤리아는 인간의 언행을 규범화하기 때문이다. 샤리아는 판사의 판결, ‘무프티’(Mufti, 법 해석의 최고 권위자)의 종교적 사안에 대한 신학적 견해 선포, 인간 언행에 대한 선악 판단, 정치가의 정치적 판단에서 반드시 필요한 원천이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무슬림의 행동 양식은 샤리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주(註)

 

1) 우리는 그동안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을 서구로부터 받아들여 고유 명사들을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였다. 곧 무함마드를 모하메드로, 무슬림을 모슬렘으로, 꾸란을 코란으로 발음하였으나 요즘은 원어 발음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이다. 알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이 영어로 God이듯이 아랍어에서는 알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라신이라고 하면 이중으로 번역한 잘못된 표현이다.

2) 꾸란에서는 유일신 알라를 표현할 때 ‘우리’로 표현한다. 이는 아랍어의 언어적 특성이다. 아랍어에서는 웅장함, 장엄함, 위대함 등을 표현할 때 단수 대신 복수로 표현한다. 이를 문법 용어로 ta’az  m이라 부른다.

3) 아랍어를 로마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발음 표기가 안 되어 특수 문자까지 동원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랍어를 읽는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단어를 각각 띠어 읽느냐 붙여 읽느냐에 따라 그 발음이 다르고, 주격으로 또는 소유격으로 또는 목적격으로 읽느냐에 따라 발음이 다르다. 아랍어 발음으로 ‘순나 툴라’는 로마자로 sunnah All  h로 표기한다.

4) 신의 유일성에 대하여 꾸란 112장 참조. 신의 유일성은 위격(dhat), 본성(sifat), 활동(af’al)에서 유일성을 의미한다. 위격의 유일성이란 복수의 신격(神格)이 없음을 의미하고, 본성의 유일성은 신의 본성을 소유한 다른 존재가 없음을 의미하며, 활동의 유일성은 어느 누구도 신이 행하였거나 행할 일들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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