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12호>논단1-유대교와 구원관/권혁승 목사(서울신학대학교수

2002. 4. 4. 오후 12:17:12

글자

12호 2002년 봄 선교


논단 1

 

 유다교와 구원관

     

권혁승(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목사)

 

 

      1. 유다교(Judaism)는 어떤 종교인가?

 

      약 4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유다교를 제한된 지면에서 간략하게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다교 이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광의적 의미로서 유다교는 유다인으로 알려진 역사 속의 한 민족이 오랜 역사 경험을 통하여

    지니게 된 총체적 삶의 실제들, 그들이 지녀온 독특한 총체적 문화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유다교는 종교적 요소와 더불어

    세속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 히브리 시로 이루어진 사랑의 노래, 전통 음악, 동유럽 유다인들의 독특한 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제도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협의적 의미의 유다교는 그러한 유다인의 총체적 문화 가운데 영적이고

    종교적 성격을 띈 요소만을 지칭하는 유다 종교를 의미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본 유다교의 핵심 신앙은 우주를 창조하실 뿐 아니라 창조하고 통치하시는 한 분 하느님1)에 대한

    절대 신앙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은 시나이 산의 계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 가지 계명을 비롯하여 하느님의

    법(토라)을 주셨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요청 받고 있다. 협의적 의미의 유다교를

    종교적 관점에서만 집중한다 하여 그 내용이 단순하거나 동질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유다인의 독특한 종교로서

    유다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요소가 그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1, 하느님과 우주와 인간에 관한 교리.

      2, 개인과 사회를 향한 도덕.

      3, 예전, 풍습, 의식과 관련된 내용.

      4, 각종 법령들.

      5, 종교적 경전들.

      6, 종교적 제도와 기관들.

      7, 하느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이러한 요소들은 본질적으로 서로 독립되어 존재하거나 독자적으로 취급될 수 없다. 그것은 이들 요소들이 서로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긴 역사의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다교의 기초적 법전인 ‘미쉬나’는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미쉬나’는 단순한 법전이나 법 조항 그 이상이다. 그것은 법 문제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윤리적 원칙을 비롯하여 민사와 형사 재판, 개인의 지위 문제, 예배와 정결 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다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유다교는 하느님과 인간과 우주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모든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과 실천들로 가득한 포괄적

    삶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가? 무엇을 입을

    수 있고, 입을 수 없는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절과 안식일은 어떻게 지키는가? 하느님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등, 이와 같이 살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실제로 필요한 규정들을 유다교에서는

    ‘할라카’라고 한다. ‘걸어가다, 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할라크’ 동사에서 파생된 ‘할라카’ 용어는

    일반적으로 유다인들의 법으로 이해된다.

     

      할라카는 여러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토라의 규정된 명령들이 중요한 할라카들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유다교의 랍비들이 오랫동안 가르친 내용도 할라카에 속한다. 이 모든 할라카는 동등한 구속력을

    지니고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법을 어겼을 때에 따르는 처벌이 다르다는 점이다. 곧 랍비들이 가르친 할라카는

    성경에서 규정한 명령인 할라카보다 덜 엄격하다. 그리고 랍비들이 제정한 할라카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경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유다교의 ‘할라카’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613개 명령들

       

      할라카의 핵심 내용이기도 한 613개 명령들은 하느님께서 토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변경될 수 없는

    절대 명령들이다. ‘살인하지 마라’는 것과 같이 어떤 명령들은 그 의미가 명확하고 분명하지만, 식사 후 감사 기도와

    같은 명령은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것도 있다. 그리고 어떤 명령은 그 의미가 탈무드 해석에 따라 밝혀진 것도 있고, 어떤

    명령들은 그 의미가 겹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쉬어라’는 긍정형 명령은 ‘안식일에 일하지 마라’는

    부정형 명령과 겹쳐 있다.

      613개의 명령은 248개의 부정형 명령과 365개의 긍정형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365개의 긍정형 명령은 1년의

    365일에 해당되므로 매일 한 가지 명령을 기억해야 함을 강조한다. 248개의 부정형 명령은 남자의 뼈가 모두 248개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장 널리 인정되는 613개의 명령들은 람밤(Rambam)이 그의 저서 「미쉬네이 토라」

    에서 제시한 것이다. 람밤은 서론에서 긍정형 명령과 부정형 명령을 모두 열거한 다음 이 명령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613개의 명령들 가운데는 오늘날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제사와 제물에 관한

    명령들은 성전이 있던 시대에 지켜졌던 것들이다.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오늘에는 지킬 수 없는 명령들이다.

    민주주의 제도로 출발하는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지금에 와서 신정 중심의 국가법이나 재판 제도 등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명령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있다. 랍비 이스라엘 메일(Israel Meir)은 이스라엘

    밖에서 지켜야 할 명령으로서 77개의 긍정형 명령과 194개의 부정형 명령이 있다고 주장한다.

     

      2) ‘게제이라’(Gezeirah): 토라 보호벽

       

      게제이라는 랍비들이 제정한 법으로서 주로 토라가 규정하고 있는 명령들을 실수로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이다.

    예를 들어, 토라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게제이라는 금지된 노동을 하려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연필, 돈, 망치 등)를 만지지도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왜냐하면 도구를 들게 되면 그 날이 안식일인지를 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할라카를 실행하는 유다인들에게 토라의 명령과 게제이라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동등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것도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처벌의 경중이 있을 뿐이다.

    토라에 따르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된다. 그러나 게제이라를 범하는 것은 그보다는 덜 엄격하다. 명령과

    게제이라 사이의 또 다른 차이는 랍비가 적절한 상황에 따라 변경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게제이라는 랍비가 변경시킬

    여지가 있지만, 토라의 명령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변경시킬 수 없다.

     

      3) ‘타카나’(Takkanah): 랍비가 제정한 법

     

      할라카에는 토라에 규정된 명령이 아닌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가리켜 ‘타카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랍비가

    제정한 법이다. 예를 들어, 신구약성서의 중간사 시대에 제정된 ‘하누카’(요한 10,22에서 ‘봉헌절’이라고 언급된

    명절임) 명절에 ‘촛대에 불을 밝혀라’는 명령은 성경에서 기원하지 않은 타카나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토라를

    읽어야 한다는 명령도 후대 랍비에 의하여 제정된 타카나이다. 어떤 타카나는 공동체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1000년경의 인물이었던 랍비 게로솜은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타카나를 제정하였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토라와 탈무드에서 분명하게 허락된 제도였다. 이 타카나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그리스도교 국가에 살고 있던 아쉬케나짐

    유다인들(유럽 중심의 유다인)이 받아들였지만, 4명까지 부인을 허락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던 세파라딤

    유다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4) ‘민하그’(Minhag):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는 관습

     

      히브리어로 관습이라는 의미를 지닌 ‘민하그’는, 오랫동안 지켜 오던 관습이 종교적 구속력을 지닌 관습으로 발전한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명절의 두 번째 날 관습은 원래 ‘게제이라’에 속한 것이다. 곧 이스라엘 국경 밖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은 정확한 명절 날짜를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명절을 제 때에 지키지 못하는 실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할라카는

    ‘두 번째 날’을 정하여 규정된 명절과 같이 지키도록 제정하였다. 달력이 생겨난 후로 명절이 시작되는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자 추가적으로 지켰던 두 번째 날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랍비들은 그러한 관습을 중단하기보다 ‘민하그’로 계속 지킬 것을 결정하였다. 여기에서 ‘민하그’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명령이나

    ‘타카나’나 ‘게제이라’와 같은 효력을 지닌 할라카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민하그’는 획일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 따라 각기 다른 관습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어떤 회당에서는 특정한 기도를 드릴 때

    회중이 일어나는 관습이 있지만, 다른 지역의 회당에서는 기도하는 동안 앉아 있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관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다른 공동체의 회당에 갔을 때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 ‘파다’와 ‘가알’를 통하여 본 유다교 구원관의 기본적 이해

       

      유다교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항상 그들 문제에 개입하시는 구속자요 구원자이시다.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 역사의 종국에서도 하느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다. 그러나 유다교의 구조 안에는 비구원론적

    차원이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구원받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축복의 모형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유다교이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야훼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창세 18,19) 부름을 받았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기본 구조는 예언자들의 메시지 속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곧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 관계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랍비들의 가르침인 할라카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물론 죄에 대한 회개와 율법의 철저한 준수가 하느님의 구속을 촉진시키거나 앞당길 수 있다는 입장도 있지만, 토라와

    할라카를 지키는 일은 본래적으로 구속의 추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된 뜻에 따라 하느님과 더불어 즐겁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유다교의 기본적 구조를 놓고 볼 때 유다교의 구원관을 다루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전제하여야 한다. 가능한

    범위에서 주어진 주제인 ‘유다교와 구원론’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으로서 유다교에서 사용하는 구원과 관련된 용어를

    선별하고, 그 용어의 의미와 적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다교에서 구원을 의미하는 대표적 용어는 ‘파다’와 ‘가알’이라는 두 동사이다. 이 동사들은 하느님의 활동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원적으로는 일상적 인간 삶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주로 상법에서 적용하는 ‘파다’ 동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해방시킬 대상은 언제나 인간이 아니면

    살아 있는 동물이다. 여기에서 ‘파다’를 시행하는 주체가 해방시킬 대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가족법에서 적용하는 ‘가알’ 동사는 한 종족의 연대감을 중요시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적 개념을 반영하는데,

    곧 ‘가알’의 주체가 되는 인물인 ‘고엘’(구속자)은 도움을 받아야 할 구속 대상자가 속한 대가족 내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친족을 의미한다. ‘고엘’이 개입하는 경우는 같은 친족의 일원이 사고나 가난 등으로 그의 재산이

    친족외 다른 사람에게 팔리게 되거나 또는 그 자신이나 가족이 노예로 팔려 가게 될 위기에 처한 때이다(레위 25,25.47; 예레 32,6 참조). 또한 ‘고엘’은 그의 친족이 무고한 피를 흘렸을 경우, 그 피의 복수를 해야 할 의무를 지니기도 한다(민수 35,17-19 참조).

      성경에서 ‘파다’와 ‘가알’ 동사는 약간 변형된 의미로 하느님의 구원 활동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설명하는 ‘파다’는, 사람에게 사용되었던 경우처럼, 적합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곧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 구원 활동의 목적은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

    확보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 대적들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신명기에서 ‘파다’를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신명 9,26; 15,15; 21,8; 24,18 참조). 이러한 ‘파다’의 사용은

    후에 예언자들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 개념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판관 1,27; 35,19; 예레 21:11 참조). 때로는

    죄로부터 구원하는 개념과도 관련되었다(시편 130,8 참조). ‘가알’ 역시 하느님의 구원 활동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 본래의

    가족법의 의미를 상실하고 단순히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본래 의미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잠언은 하느님을 고아의 ‘고엘’, 곧 보호의 책임을 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잠언 23,10-11

    참조). 욥기 역시 하느님을 고난 당하는 자의 ‘고엘’이시라고 제시한다(욥기 19,25 참조).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이유를 하느님이 곧 이스라엘의 ‘고엘’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이사 41,14; 43,14; 44,6.24;

    47,4; 48,17 참조). 시편에서 왕은 가난한 자들의 구원자로 묘사되기도 하고(시편 72,4.14 참조), 에제키엘은 다윗이 하느님

    백성의 목자로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한다(에제 34,23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최종적인 소망은 언제나

    하느님에게 집중되어 있다.

 

      3. 탈무드 시대의 구원

     

      성경에서 구원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파다’와 ‘가알’을 함께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탈무드에서는 두 용어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곧 ‘가알’은 성경의 용례처럼 ‘구원하다’를 의미하는 반면에, ‘파다’는 ‘속전’ 또는

    ‘속죄금’(ransom)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 탈무드 시대의 랍비들은 외부로부터 기적적으로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집단적으로든 개별적으로든 하느님의 특별한 개입이 필요하거나, 치료할 결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알’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게울라’(구속)는 전적으로 국가적 구원을 의미하며, 국가적 해방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곧 이스라엘 구속의 중심 주제이며, 이 구원

    개념은 로마의 지배 동안 더욱 두드러졌다.

     

       탈무드 시대에 발전한 이스라엘의 거국적 구원 개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이 구원은 전체 이스라엘의 회개와 그에 따른 올바른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2,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요소에 의하여 이 구원이 과연 어느 때에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주장은 강력하게

           거부되었다.

       3, 비록 구원자로서 메시아 개념은 중요하지만, 구원 과정에서 메시아의 역할은 모세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단지 하느님 손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4, 과거 하느님이 택하신 인물들을 통하여 성취된 구원이 일시적인 것과는 달리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거국적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느님 자신이 이루실 영원한 구원이다.

       5,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 세계의 구원을 가져오게 한다. 따라서 모든 이방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개종자들이 되며

          세계의 모든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4. 중세 유다 철학 속에 나타난 구원관

     

      성경과 탈무드 시대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중세 유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유한한 상태를 구원의 일차적 필요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성을 인간의 잘못된 행동이나 죄의 결과로 보지 않고 창조의 특성이 지니고 있는 우주적 상황으로 보았다.

    중세기 유다 철학자들은 우주의 창조가 하느님의 선하심과 은혜에 근거한다고 이해하였다. 하느님의 선하심에도 인간은

    처음부터 유한하게 창조되었으며,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절망과 죽음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인간은 자연히

    구원이 필요하며, 또한 하느님의 선하심은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참여하여야만 한다. 곧 참된 신앙을 지켜야 하며 올바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인으로서 영원한 벌과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유다교에서 죄는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구원을 방해하는

    요소로 이해하고 있다.

      구원과 관련하여 중세 유다 철학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눈다. 첫 번째 구원관은 ‘사아디아 가온’(Saadiah Gaon)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초월주의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비록 유한한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창조된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신의 유한성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도록

    하느님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인간에게 율법, 곧 하느님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계명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구원은 두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메시아의 구원이다. 메시아는 모든 유다인을 자신들의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부활이다. 메시아 시대가 끝나면 곧 이어 세상의 끝이 오게 되는데, 이 때에 모든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부활이다. 그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은 영원히 살게 되며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상을 받게 된다.

      두 번째 구원관은 ‘마이몬이데스’(Maimonides)로 대표되는 철학적 자연주의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주는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창조되었지만, 우주 창조는 인간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하느님이 손수 만드신 대상도 아니다. 인간

    세계나 인간 자체는 오히려 사물에서 만들어졌다. 사물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유한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 그런 인간에게

    구원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인간이 지닌 물질적 요소를 극복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물질적인 지성을 형이상학과 과학 연구를 통하여 습득된 지성에 활용함으로 인간 구원이 구체화된다, 곧 형이상학과 과학

    연구를 통하여 습득된 지성은 인간이 지닌 물질적 욕구를 뛰어 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지성은 육체와 구별되어 존재할 뿐

    아니라 인간의 유한한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죽을 때 인간에게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5. ‘카발라’(kabbalah) 신비주의와 구원관

     

      카발라 신비주의는 랍비들이 발전시킨 구원관에 별 다른 요소를 추가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유다교 구원관에 기여한

    점은 구원의 내적이고 숨겨진 신비적 요소를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곧 구원의 과정 속에는 내적이고 신비적 요소가 있는데,

    그 요소들이 상징적 방법을 통하여 알려지고 표현된다. ‘받아들인 것’이라는 의미의 ‘카발라’는 탈무드에서 성경에

    쓰여진 율법 이외에 말로 전달된 ‘구전 전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12세기와 13세기 프랑스와 스페인 등지에서

    새로운 의미, 곧 옛날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유다 신비주의의 특정한 가르침을 의미하였다.

      카발라 신비주의가 주장하는 핵심 요소는 위에 계신 하느님, 곧 무한한 힘과 지혜를 지니신 하느님과 아래 세계에 있는

    유한한 인간 사이에 중단 없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절대 신념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악한 성품을

    제어함으로써 부정적 세력의 어두운 면을 약화시킬 수 있다. 카발라 신비주의의 기본 개념은 즈가리야 14장 9절,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 하느님은 야훼뿐,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을 부르게 되리라.”에서 시작되었다. 카발라의 핵심

    문서인 ‘조하르’(Zohar)는 이 구절을 포로 기간 동안 하느님의 통일성이 온전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는 본문으로

    이해하였다. 곧 포로기는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에게 하느님의 통일성이 손상된 상태임을 지적해 준다. 따라서 구원은 창조의

    핵심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장치의 변화와 연관된다. 만일 포로기가 하느님과 하느님의 ‘세키나’(Shekhinah: 현존, 거주)

    사이의 잠정적 분리로 표현된다면, 이들의 연합은 완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속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인 ‘세키나’가 자신의 남편인 하느님에게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구원을 설명하였다. 포로기 동안 세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신비에 따라

    행동하지만, 구원은 ‘생명의 나무’에 따라 행동하는 세계가 된다. 이 나무는 원래 뿌리가 하나였으나 아담의 원죄 때문에

    두 나무로 분리되었다. 결과적으로 포로기 동안 선과 악, 정결과 부정의 분리된 영역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구원의 때에는

    모든 세계의 순수하고 영적인 요소가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생명은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며 전체

    창조물의 상태에 깊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은 구원을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한

    사람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로기와 구원을 갈라놓은 것은 세계 열강이 이스라엘을 억압함으로써 발생한 창조

    구조의 변화이다.

      루리안 카발라 신비주의는 이전의 카발라 신비주의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릇이

    깨어짐’으로 표현되는 모든 세계에는 조화가 없고 혼란이라는 소란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란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본래에 주어진 완전한 회복을 향한 단계들이다. 이러한 이해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사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구원관에서 대두되는 문제는 유다인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구원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며,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은 구원 성취에 아무런 역할이 없다. 이 견해는 스페인 계통의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였다. 둘째, 구원은 카발라가 가르치는 삶의 방식에 따라 실천하는 이스라엘 행위에 근거를 둔

    ‘티쿤’(tikkun: 고침, 교정)이라는 내적 상태의 외적 표출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티쿤’은 기적 사건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행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메시아의 도래는 세계의 ‘티쿤’(티쿤 하올람)의 성취와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이루어야 할 사명을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이 역사 안에서

    준비해야 할 요소가 있으며, 이 준비가 충족되면 메시아는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 견해는 이삭

    루리아(Isaac Luria)의 제자들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던 사상으로, 루리아 카발라 신비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루리아 카발라

    사상에서 강조되는 명상과 종교적 실천은 강력한 행동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루리아의 카발라 운동은 곧 행동주의 성격을

    띈 메시아 신비주의를 일으켰다. 이들 카발라 운동은 모든 기도와 헌신과 실천을 하나의 목적이 있는 행동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과 온 세계를 ‘티쿤’, 곧 구속에 의한 회복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가 된다. 구속에 의한

    회복이 이루어지면, 그 안에서 타락한 세계와 인간, 그리고 덜 완전한 신이 비로소 완전에 이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교리는 급기야 유다교 안에서 이단적 메시아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7세기 사바타이 세비(Sabbatai

    Sevi, 1626-1676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메시아 운동이 그 대표적 예이다. 세비는 서머나 출신의 유다인으로서 탈무드와

    카발라 연구에 몰두하였고 금욕 생활을 실천하였다. 22세 때 그는 신비적 계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유다인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기록된 메시아 운동을 일으켰다. 그와 같은 급진적인 메시아 운동에 대하여

    18세기 동유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 바알 셈 토브(Israel Baal Shem Tov)의 하시딤 운동은 이전의 열광적인 메시아

    운동들이 지니고 있었던 높은 폭발성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하시딤 운동’은 18세기 남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신비주의 경향의 신앙 부흥 운동이다. 이 운동은 동부 유럽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에는 이스라엘과

    미국까지 널리 퍼져 있다. 하시딤 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배경 중의 하나는 샤바타이 세비가 일으켰던 거짓 메시아 운동이

    남긴 영적 허탈감이다. 바알 셈 토브의 사상은 루리아의 신비적 카발라 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루리아가 주장한

    ‘티쿤’ 교리를 따라 이스라엘의 구속, 하느님 임재(Shechinah) 그리고 전체 창조 세계를 하나의 조화로 복구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6. 유다교의 메시아는 누구인가?

     

      하느님을 잠재적으로 늘 현존하시는 구원자로 여기는 유다교는 성격상 본래 비메시아적 종교였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발전한 메시아 사상은 지속적으로 영적-역사적 방향에서 유다교의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곧 유다교의 메시아

    사상은 후차적 요소였는데, 후대에 이르러 중심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메시아 사상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를 확연히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이다. 무엇보다 메시아의 도래 시기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아가 이미 이 땅에 오셨다고 믿는 반면, 유다교는 메시아가 아직 오시지

    않았으며 미래에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을 갖고 있다. 메시아가 어떤 인물인가에 관하여도 두 종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메시아는 비록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삼위일체에 속하는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이에

    반하여 유다교는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인간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유다교의 주장은 이사야 11장 1절과

    같은 구약성서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메시아가 신이 아니라 인간임은 이사야 제52-53장에서 소개하는 ‘고난받는

    종’에서 더욱 강조되어 있다. 다윗 왕가에서 태어난 메시아는 구속 사건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을

    대신하여 담당한다는 것이다.

      유다교에서 메시아의 도래 시기는 하느님의 시간 계산으로 이루어지며, 그때는 곧 인류 역사가 종결되고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는 역사의 종말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메시아 사상은 곧 종말 사상이기도 하다.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종말의 중요한 요소는 죽은 자의 부활 사상이다. 여기서 부활 사상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과 더불어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온전하여 진다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유다교의 가장 대표적 기도문인 ‘18개의 기도문’(쉬모나 에스레)의

    두 번째 기도문 내용은, 메시아 시대를 여신 구속자 하느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시는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유다교의 메시아 사상은 사회적 관점에서 항상 두 가지 상반된 견해로 상호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행동을 기다려야 한다는 수동적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들이 유토피아적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낙관론적

    견해이다. 이 상반된 두 견해에 대하여 정통적 유다교가 취하고 있는 입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이 아닌 양자 사이의

    절충안이다. 곧 인간의 경건한 삶과 노력은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이 메시아의

    도래를 연기시킬 수 없다는 입장도 유다교의 주장이다. 이는 인간의 도움 없이도 하느님은 얼마든지 당신이 설정하신 시간에

    구원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에 의하여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자유주의와 진화론적 사상과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유럽의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의 정복 등으로 게토(Ghetto: 유다인 거주 지역)의

    벽이 무너지고 유다교가 세속적 현대성에 빠져들면서 낙관론이 이미 태동되었다. 유다인들이 게토에서 빠져나와 해방,

    공민권, 동등한 기회 등으로 표현되는 현대 세계로 몰려 들어오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개선할 수 있고 구속이 가능한

    세계를 세우겠다는 열정적 신앙을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극단적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혁명 운동에

    유다인들이 많이 참여한 것도 그러한 분위기와 관련된다. 이러한 유다인들의 활동은 유다교 신앙에서 메시아적 특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유다인들의 민족 해방 운동인 시온주의(Zionism)는 사회적으로 세속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종교적 측면으로는 비메시아적 성격의 민족 사회주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혹자에 따라서 ‘구속적’

    사건이라고까지 해석하기도 하는 신생 이스라엘의 건설은 메시아 해석을 허용하거나 조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유다교의 구원론은 개인적 구원이 핵심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이 중심 주제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한

    거국적 구원은 어느 한 개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느님에 의하여 성취됨을 전제하고 있다. 메시아의

    역할이 나름대로 강조되어 있지만, 유다교의 메시아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대리자인 역사적 인물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삶이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구원은 개인적 경건심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건한 삶 역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유다교는 유일신관을 중심으로 율법적 규범을 강조하는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토라를 근간으로 삼고 있는

    할라카의 중요성은 유다교 신앙과 경건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러한 인간 삶 중심의 공시적 기본적 구조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는 통시적 관점의 메시아 사상과 변증법적 긴장감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유다교의 규범적 전통과

    역동적 하느님 구원 사이의 긴장감은 전통적 유다교의 특성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유다교의 구원관은 이러한 긴장 구조 안에

    자리잡고 있다.

     

      * 참고 도서

     

      노먼 솔로몬, 「유다교란 무엇인가?」, 최창모 역, 동문선, 서울, 1998년.

      Milton Steinberg, Basic Judaism, A Harvest Book, New York, 1947년.

      Solomon Schechter, Aspects of Rabbinic Theology, Hendrickson, 1909년.

      Abraham Ezra Millgram, Great Jewish Ideas, ed. Clinto, Mass., Colonial Press, 1964년.

      R. J. Zwi Werblowsky, The Encyclopedia of the Jewish Religion, ed. Jerusalem, Massada, 1966년.

      Encyclopedia Judaica, Vol. 1-16. Jerusalem, Keter, 1972년.

       

      주(註)

       

      1) 편집자 주: 필자는 하나님으로 표기하였으나, 편집 원칙에 따라 하느님으로 표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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