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1784년 이승훈 (李承薰,1756-1801)은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李檗,1754-1786)의 집 대청에서 이벽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한국천주교회의 기원을 이루는 일이었다.
여기에서는 이 장면을 재현해 보았다. 당시 이벽의 나이 30세였으며, 이승훈은 28세의 청년이었다.
이승훈이나 이벽은 양반 출신이므로 두 사람 모두 유건(儒巾)을 쓰고 중치막을 입고 옥색(玉色) 술띠를 띠었다.
이승훈의 옷감은 항라이고, 이벽은 무명옷을 입었다.
<역사적 배경>
이벽(李檗)의 원명은 덕조(德祚)이며, 본관은 경주로서, 정약현(丁若鉉)의 처남이었다.
그는 1777년 권철신, 정약전등과 함께 천주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벽의 친척이었던 이승훈이 1783년 동지사(冬至使)의 일원으로 중국에 파견된 부친을 수행해서 북경(北京)에 가게 되었다.
이벽의 부탁을 받은 이승훈은 북경에 가서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구입했고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이승훈은 귀국한 이후 이벽에게 그리스도교 세례를 집전함으로써 조선사회에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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