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2015. 5. 9. 오후 7:10:39

글자

 

 

<서로 사랑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은 이미 요한복음 13장에 나왔었던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이 말씀에서 "알게 될 것이다."는 사실상 "알게 하여라."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와 "사랑 실천을 통해서 내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여라."입니다. 여기서 '제자' 라는 말은 사도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만일에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순교'를 통해서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만일에 하느님과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순교'는 무의미한 죽음이 될 뿐입니다.

날마다 미사 참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영성체를 함으로써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만일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빈껍데기일 뿐이고, 그것으로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세례 증명서를 제시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 증명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예언도, 믿음도, 희생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1코린 13,1-3).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1)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목숨을 내놓는' 사랑입니다(요한 15,13). 이 말은 꼭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베푸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 우리는 서로(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사랑으로' 공동체를(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함께, 한 몸처럼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서로' 라는 말이 하나의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입장에서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할 테니까 너도 똑같이 나를 사랑하여라." 라고 요구한다면, 또는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라고 비난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 됩니다. 이 말에는 사랑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네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가 진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나를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나를 사랑하여라."와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어떻게 다를까? 단순히 표현의 차이일까?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여라."는 듣는 쪽에서는 '강요'로 들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강요'가 아니라 "내 사랑을 받아들여라." 라는 호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 쪽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신앙인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주는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고 호소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웃이 우리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변화되고, 그래서 그 사람도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은 그쪽에서 스스로 실행할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일, 그것뿐입니다.

여기서 '계명'('명령')이라는 말도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명과 명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이 말은, 뜻으로는 '당부', 또는 '권고'에 가깝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사람에게 "살고 싶다면 내 손을 잡아라." 라고 명령하듯이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것도 사랑이고, 명령하듯이 말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 말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강제 명령으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인의 사랑 실천은, 싫든 좋든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또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호소, 권고, 당부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스스로 '기쁨으로'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정말로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싫은 마음을 누르고 좋은 마음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앙인은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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