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토요일>물 위를 걸으시다 (요한 6,16-21)

2015. 4. 18. 오전 6: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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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토요일>물 위를 걸으시다 (요한 6,16-21)

 

 

이제 사도행전은 교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전해 준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홀대받았기 때문이다. 초기 공동체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이들을 뽑아 식탁 봉사를 맡기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스테파노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났다(사도행전 6,1-7).

 

요한 복음에서, 빵을 많게 하시는 표징이 있은 다음 제자들이 배를 타고 카파르나움으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신다. “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보라는 것이다(요한 6,16-21).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두려움, 근심, 걱정, 고통은 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숙제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주님! 제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도록 용기를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할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시고,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초대교회는 공동체가 커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고아와 과부들이 식량 배급에서 소외되는 문제,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하는 문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박해의 칼날이 있었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성령께 의지하면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저도 제 앞에 놓인 일들 때문에 걱정을 하곤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평화방송 녹화가 있었습니다. 한 달 전부터 먹은 것이 체한 것처럼 가슴 한쪽이 답답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떨리고, 녹화를 잘 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녹화를 잘 마쳤고,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26일에 있을 성소주일 행사도 그렇습니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사람들은 많이 오면 좋을 텐데, 장비는 잘 설치되어야 할 텐데, 신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을 합니다. 이 또한 다 지나갈 일인데 그렇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근심, 두려움은 사실 90%는 생기지 않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오늘 옷이 젖는 경우도 없고, 내일 내릴 비 때문에 오늘 우산을 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 때문에 오늘 마음의 상처를 더 키우기도 합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근심 때문에 지금 기쁜 마음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살면서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려움과 갈등이 우리 주변을 맴돌 것입니다. 그럴 때, 오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다. 두려워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고, 그래서 많은 박해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걱정하고, 근심할 시간에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으로 보는 신앙-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 6,4)

어떤 조직이라도 커지게 되면 여러가지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소규모일 경우에는 뜻을 같이 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큰 규모의 조직보다는 갈등이 적은 편이지요.
여러분이 속해 있는 단체나 조직은 어떤가요?


교회라는 조직도 비슷하겠지요.
대형교회 일수록 문제가 많지요.
남들이 보기엔 크고 멋진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실제로 개척교회나 시골공소같은 작은 공동체들이
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친교 가운데 살아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갈등해소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소공동체로 조직을 나누면 좋겠지요.
그렇다고 무작정 작게 나눈다고 꼭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 조직을 이끌어갈 일꾼들이 있어야겠지요.

본당신부나 담임목사, 주지 스님...
조직과 단체의 장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고
나머지 봉사는 신도들 중에 혹은 조직원들 중에
지혜와 성령,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을 협력자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쇄신이 더딘 이유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기도와 말씀봉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못 만들고 있기 때문이고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신망이 두터운 평신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말씀봉사는 쬐끔하는 편인데 기도에는 충실치 못하니 교회쇄신의 죄인입니다.
그리고 멋진 평신도들을 키워내지도 못하고 협력자로 잘 쓸 줄도 모르니 더 큰 죄인입니다.
죄송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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