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가져다 준 기쁨

2007. 3. 8. 오전 9: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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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가져다 준 기쁨’

그동안 창가에 서면 훈훈하게 불어오는 봄 바람 때문에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봉긋봉긋 오를 것만 같았는데,
저만치 물러가 있던 겨울이 성큼 다가온 봄을 시샘한 듯, 그만 하얀 눈꽃을 피웠습니다.
다시 겨울이 된 듯한 찬 기온에 온 몸이 움츠러들기만 합니다.

하지만 요즘 생활성서사의 점심시간만큼은 ‘후다닥!!’입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뒷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만큼 달콤한 휴식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 동안 산에 가려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는데
어디선가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그림은 이랬습니다.
현관 앞에는 한 수녀님이 얼굴을 손에 묻고 주저앉아 있었고,
문 밖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너무 놀라 멍하니 서 계셨습니다.
저 역시 깜짝 놀랐지만 굳이 왜 그러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생활성서사에는 현관 유리문이 두 개가 있습니다.
손님이 오시면 누군가 나가서 바깥 현관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마음이 착한 그 수녀님은 손님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초인종이 울리면
즉시 뛰어나가곤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음이 앞선 나머지 한쪽에 하나 더 있는 유리문을 보지 못해
그대로 유리문에 얼굴을 부딪쳐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반갑게 인사하며 나오던 수녀님이 눈앞에서 유리문에 부딪치는 모습을 목격한
우체부 아저씨의 놀란 표정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했는데,
코뼈가 부러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웃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그날 저녁 수녀원은 웃음바다였습니다.
왠지 수녀님에 대한 위로보다는 자꾸만 웃음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저희들은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지요.
그러자 입술까지 퉁퉁 부어올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녀님은
공동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저 때문에 너무 즐거워하시네요.
제가 공동체에 오랜 만에 기쁨을 선사한 것 같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엉뚱하면서도 털털한 수녀님의 여유 있는 한마디는
그 순간 더욱 웃음꽃을 피게 했답니다.

사순 제2주간입니다.
이 사순 시기에 예수님의 고통과 수난을 묵상하면서
관계 안에서 겪게 되는 작은 고통 하나라도
온전히 받아들여보는 연습을 해 보면 어떨까요?
고통을 온전히 받아 들여 볼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관계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답니다.

행복지기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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