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통상문으로 살펴본 미사 소프트웨어 / 정훈베르나르도 신부님 강의 내용 요약
(여기에 수록한 내용은 가톨릭교리학교 교육시간에 '미사 통상문으로 살펴본 미사 소프트웨어'라는 제목으로 정훈 신부님께서 강의하신 내용과 '미사의 소프트웨어<정훈>' 책자를 중심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읽으신 분들에게 미사참례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올린 것입니다. 읽으신 분들의 생각과 본질이 다를 수도 있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이 글은 본인이 직접 작성한 내용으로 오타나 본말과 다르게 표현 될 수도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미사에 대한 생각 바꾸기= 성사에 올바르게 참례하려면, 성사를 대상화하는 고정관염부터 바꿔야 한다. 우선 성사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격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로 깨달아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성사는 궁극적으로 ‘온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 이다. 또한 당장 실존적으로 내가 알아들어야 하는 일은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일’ 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사에 대하여= ‘미사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 ‘주님의 식탁’, ‘최고의 기도’ 등의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미사가 그렇게 엄청난 ‘은총의 보고’ 라는 사실은 미사 참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깨달을 수 있다. 체계적인 영적 성장을 거치지 않고, 남이 알려주었지만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느님의 잔치’ 인 미사에 참례하다보니, 우리는 흔히 ‘미사를 본다.’ 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강 건너 불구경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표현은 발바닥과 혓바닥만 성당에 와 있다고 자백하는 것이 된다. 내가 미사 속으로 들어오고 미사와 섞여 거룩하게 변할 생각을 해야 한다. 미사를 자기 삶으로 만들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미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보다 ‘미사를 어떻게 참례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성체성사, 즉 미사는 한마디로 ‘나를 예수로 만드는 일’ 인데, 지금처럼 미사에 참례하면 결코 예수님이 될 수 없다.
평생을 함께 산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하느님과 의사소통이 저절로 되리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사 통상문을 꼭 외어야 하는 것이다.
미사 통상문은 면허시험의 필기시험과 마찬가지다. 뻔한 것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다. 대부분 신자들은 ‘미사는 사제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부분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미사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제 ‘미사는 전문가인 신부님이 알아서 하시고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돼지 목에 걸린 목걸이나 개발에 편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사에 참례하는 자세는 지금과 거꾸로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그분을 수행한 사제를 모시고 미사를 지낼 잔치 상을 직접 차리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바로 내가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미사를 주관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미사를 통해 내가 예수가 되려면 지금까지의 인식을 전환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미사가 겉보기에는 예수께서 우리를 초대하는 잔치이지만, 미사 속으로 깊이 참례하다보면 이제 내가 그분을 주빈으로 모시고 내 삶을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당신을 우리 먹이로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셨던 것처럼, 이제 내 삶으로 여러 요리를 하여 가능하면 다양하고 푸짐하게 제사상을 차려야 하겠다.
그날 미사에서 새로움 찾기
우리가 미사에 대한 고정된 선입관을 갖고 있으면, 하느님의 잔치에 인격적인 신선함을 느낄 수 없다. 미사 참례의 사전 준비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새로워지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미사에 대한 신선함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본 기도와 독서와 복음,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 그리고 감사송도 포함시킬 수 있다. 특히 본기도는 그날 미사가 지향하는 큰 줄기, 즉 ‘테마기도’ 이다. 그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가 함께 공동 지향을 갖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전례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 독서와 복음은 그 날 하느님께서 내 삶에 내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이다. 그 말씀의 주인공은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또 예물기도와 영성체 행렬을 하는 앞과 뒤에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심화시키고 내 삶과 그날의 미사를 연결하는 기본적인 묵상 재료를 제공한다.
우리는 보통 미사에 참례할 때 지참하는 미사 책에는 이 내용들이 다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미사 참례 전에 - 집에서 토요일 밤 또는 주일 아침에, 하다못해 성당에 미리 와서 - 이 기도문들과 오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오늘 미사가 내 삶과 어떤 관계인지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들은 우리가 미사 중에 주로 귀를 통해 기도하도록 되어 있는데,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는 다양하고 의미심장한 신학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그냥 스쳐 들으면서 기도할 수 없다. 이 기도는 우리 자신들에게 영적인 풍요로움과 신선함을 주기 위한 코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고, ‘내 삶의 기본 코드와 서로 상통하는 내용이 있나?’ 아니면 ‘요즘 내가 갈망하던 문제를 신앙적으로 바라보는데 어떤 역할을 하나?’ 하는 검토 묵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미사 시간에 머리와 마음을 열어 그 내용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런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귀중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 앞에서 하느님께서 열심히 나를 위해 피 흘리시며 설득하시는데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미사를 위한 사전준비= 그날 본기도를 비롯하여 독서, 화답송, 복음 환호송, 복음, 보편 지향기도,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등을 미리 읽고 숙지한다. 미사 예물은 미사 책에 끼워 놓던가, 꺼내기 편한 곳에 미리 준비한다. 공복제를 지키며 늦어도 미사 시작 10분 전까지 자리에 앉아 주님 맞을 준비를 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성수 기도를 바치고 제일 앞쪽 안쪽부터 앉아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 배려한다. 사전에 미사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몸은 성당에 왔지만 마음은 미사에 오지 않은 것이다. 성당이라는 참 삶의 현장에 와서 미사를 통해 자신의 진짜 삶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고 신앙으로 정돈해야 하는데, 머릿속이나 마음 속, 또 감각기관에 잔상으로 남아 있는 세속적인 것들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뒤숭숭한 상태로 그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는 정성만큼 미사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옷도 주님 앞에 나아가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인지 살펴보고 손바닥 청결 상태도 미사 전에 미리 점검해야 한다. 따라서 미사 참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당에 와 있어도 하느님 아드님의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난 신세일 수 있다.(마태 22장 참조)
시작성가= 미사 시작 전 워밍업이다.
성호경= 성호경을 그음으로써 미사가 시작된다. 성호경을 그을 때는 왼손의 모든 손가락, 엄지손가락까지 붙여 명치를 가린 후, 오른손으로 내 몸에 십자가를 긋는다. 이때 오른손도 엄지손가락까지 다 붙여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편 후 먼저 이마에 ‘성부와’ 하면서 손을 올려야 하는데, 이때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되며 배꼽 바로 위까지 크게 짚으며 ‘성자와’ 하고, 왼쪽 어께 끝과 오른쪽 어깨 끝을 짚으며 ‘성령의’ 하며, 다시 합장을 하면서 ‘이름으로’ 하고, 합장하고 나서 ‘아멘’이라고 하면 된다.
지금 성호를 긋고 있는 내가 하느님을 큰 소리로 부르짖듯이 부르는 기도가 바로 성호경이다. 그것도 바로 내 인격과 삶에 오시라고 부른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성부, 성자, 성령‘을 모셔서 나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초대하는 기도이다.
사제가 미사를 시작할 때, “성부와”하는 기도가 내 귀에 들어올 때 “아! 나를 만들어주신 바로 그분이구나!”하는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올라야 한다. 다시 말해 실존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성자와”하는 말이 사제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에는 ‘바로 나를 구하신 분이구나!’하는 내용 정도는 머릿속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의” 하고 기도하는 부분도 ‘나를 이끌어 가시는 분!,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내 삶을 섭리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멘” 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삶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멘” 이란 응답의 요체이다. ’‘아멘’ 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는 전인적 동의를 의미한다.
성호경은 하느님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그분을 부르는 수많은 방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도대체 왜 사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통 알 수가 없는 현실의 혼란스러움이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더라도 ‘성부, 성자, 성령’ 을 제대로 부를 수만 있다면, 그 엉킨 실타래 같은 세속 생활이 신앙적 삶의 데이터로 정돈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성호경은 성삼(삼위일체 하느님)을 크게 부르는 기도이다. 내게 와 주십사 하고...
성부= 나를 창조하신 분, 나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 내 창조주
성자= 나를 구원하신 분, 나의 구세주.
성령= 나를 이끌어 가시는 분, 나의 인도자, 나와 함께 계시는 분.
*나를 만드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분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멘= 동의를 뜻함.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사=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 라고 응답을 한다. 이때 신자들은 사제를 향해 인사를 한다. 이 미사 중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길 서로 청원한다.
참회= 미사 시작 전에 미리 나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성찰하고 용서를 구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사제가 “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라고 권고의 말씀을 하면 미리 성찰해두었던 죄에 대하여 뉘우치면서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하며, 자신의 잘못한 죄에 대하여 수직 수평적인 도움을 청한다. 이 때 가슴을 치는 강도(强度)는 마음에 와 닫도록 쳐야 한다. 사제의 청원으로 성모님과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이 나를 위해서 하느님께 빌어주신다.
사제의 청원만으로도 많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 이때 고해성사에 가까운 은총을 입게 된다.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라는 기도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자비송= ‘내가 죄악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자비로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자비송을 바친다.
대영광송
주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는데, 성부, 성자, 성령께 맨 처음 나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찬양을 하고 하느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서야 비로소 대영광송이 된다.
『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주님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이다.』
(이 부분까지가 성부께 드리는 찬미 찬양 부분임.)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부분은 성자께 자비를 구하는 부분임.)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 아멘.』
(마지막에 성령과 함께, 성삼위를 찬미 찬양한다. )
본기도= 테마기도이며, 그날 전례의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으므로 기도 내용에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야 한다. 미사 시작 전 고유 기도문은 미리 숙지하는 것이 나를 미사의 예물로 봉헌하는데 도움이 된다.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가 그날 미사의 테마기도라고 보아야 한다. 이 기도문은 미사 시작 전에 미리 암기해야 한다. 그래야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귀에 들리지가 않는다.
말씀의 전례
말씀의 전례 중 독서는 앉아서 듣는다. 이는 편안한 상태에서 잘 들으라고 앉힌다.
성경은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성경 말씀은 내 삶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독서 말씀은 미사 전 미리 숙지해야하며 말씀이 내안에 들어와 내 자신이 담겨져 나가야 한다. 이 미사를 통해서 내가 예수로 변해야 한다. 예수로 변한다는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복음 환호송= 복음 환호송을 알기 위해서 그날 복음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모든 기도문이 지니고 있는 빛과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 선포되는 복음을 잘 경청해야한다.
강론= 강론은 일종의 소화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참고자료이므로 신부님의 취향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강론 말씀은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 사도신경은 신앙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신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믿는다’는 내용이다. 믿어야 가톨릭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나 자신을 맡겨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끗이 정화(걸음 망, 정수기)하게 된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표준이다. - 보편 지향 기도로 이어진다.
보편지향 기도= 기도의 내용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주님께 청원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여기서 ‘이 제물’은 나를 뜻한다.
성찬 전례= 내 살과 피가 미사의 제물이 되어 제대위에 올려 저야 한다. 제대 앞에 나왔으면 빵과 포도주에 나를 담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제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나를 제대위에 올려놓는다.
“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라고 사제가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친다.
여기서 빵은 우리의 살이며, 술은 우리의 피가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므로 써 나 자신이 예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 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소서.” 라고 사제의 기도 끝에 기도를 드린다.
왜?= 나를 받아주셨기에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감사송= 실제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 힘이 실린 기도, 내 마음이 실린 기도는 감사로 이어진다. 감사송도 외어야 한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찬 그 영광! 높은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이렇게 ‘거룩하시도다’ 에서 느낌표가 일곱 번이나 나온다. 그만큼 감사를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내가 거룩하게 변할 때가 왔다. ‘호산나’는 ‘만세’라는 뜻이다. 하느님 만세!
성령 청원 축성 기원
“거룩하신 아버지(성부/나를 예수로 만들어 주실 분),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이때 복사가 종을 친다. 종을 치는 이유는 정신을 집중하라는 뜻임.) 성령(내가 예수로 살도록 이끌어 가실 분)으로 인하여 예물(나, 내 삶, 인격)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성찬 제정과 축성문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여기서 우리의 살과 인격이 예수님으로 변하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린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여기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린 피’는 바로 내피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성혈을 흘리면서 살아야 신앙의 신비가 된다. 거양성체 때 나와 예수님과 섞여 있는, 한 몸이 되어 있는 것이 보여야 한다. 육체를 이탈하여 자신이 십자가 밑에 있어도 된다.
신앙의 신비여!
기념과 봉헌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생명의 빵과 구원의잔’ 은 내 살과 피를 봉헌하는 것이다. 봉사란 자기의 살과 피를 봉헌하지 않으면 봉사할 것이 없다. 내가 생명의 빵이 되고 구원의 잔이 되어 봉헌되므로 봉사가 되는 것이다.
성령 청원: 일치 기원 (공동체의 성변화)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로 변한 사람들끼리의 연대- 미사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예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인 것이다.
전구
온 세상의 교회, 교황‘ 교구장, 모든 성직자들과 연대. 세상을 떠난 교우들, 복되신 동정마리아, 사도들과 모든 성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나와 함께 하느님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침 영광송을 통해 주님을 찬미한다.
‘아멘. 예수로 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야 말겠습니다.‘“
영성체 예식
주님의 기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다 함께 정성들여 바칩시다.” 주님의 기도는 복음의 요약 판이다. 이때 그날 복음을 떠올려야 한다.
평화의 예식= 주님의 기도를 증폭 시킨다. 메아리 효과, 예수님의 수난은 다 지나가고 무서워서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예스님께서 나타나 평화를 빈다.
평화의 인사= ‘명복을 빈다’는 뜻이다. 이제 예수님으로 변했으니 복음 선포를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죽으라면 세상 적으로 보면 악담이지만 복음적으로는 덕담이다. 성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빵 나눔=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영성체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게 된다.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지키려고 해야 한다. 십자가로 문신 하듯이 자기 몸에 새겨야 한다. 이때 마음속으로 작은 결심 한 가지를 하자.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를 때, 마치 내 이름을 부르고 듣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미사 참례를 제대로 하면 ‘하느님의 어린양’은 이미 내 이름이 된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지만, 이제 나를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더 이상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나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미사 참례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어린양’에 담겨야 하는 우리의 고백 내용은 “이제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하면서, 그러니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십시오.” 하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영성체의 구체적인 시작= 영성체는 말 그대로 예수이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일이다.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느껴야 한다.
영성체 부분은, 사제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 주면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면서 시작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렇게 제발 보라는데도, 끝까지 보지 않는 우리의 태도다. 우리가 여기서 가져야 하는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그분과 하나가 되고 있는 나 자신도 찾아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하고 로마 백인대장처럼 애틋하게 기도할 때에도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명백해진다. 이렇게 영성체는 눈으로 예수를 받아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눈을 감을 수도 있지만, 마음의 눈에는 성체이신 예수님으로 꽉 채워져야 한다.
앉을 때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앉는다. 앉은 후에도 우리는 예수를 받아 모셔 그분과 하나 되려는 준비를 해야 한다. 성가를 함께 부르지 않고 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받아 모시기 위해 제대 앞까지 나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주님, 저에게 어서 오소서.”하는 화살기도는 배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대 앞까지 나왔을 때, 자기 앞 사람이 성체를 받을 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여 나에게 오신 예수께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십자가를 보고 절을 하거나 사제한테 절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예수를 받아 모실 차례가 되면 “제가 당신과 하나 되어 당신이 되게 하소서.” 하는 절실함이 배어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손을 내밀 때도 예수님께서 땅 바닥에 떨어질 위험이 있으므로 손을 가지런히 편 상태로 성합 근처에 손을 내밀면 된다. 그리고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면 “아멘.”하고 대답을 하면서 성체를 받아 옆으로 두 세 걸음 움직여 성체를 영한다. ‘아멘’은 이는 ‘예,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당신과 하나가 됩니다.’ 하는 정도의 신앙 고백을 담아야 한다. 성체를 영한 후에는 절을 해서는 안 된다. 바로 내가 하느님을 받아 모신 성전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경의를 표할 수 없다. 영성체를 할 때 가져야 하는 소프트웨어는 “아! 내가 이제 예수님으로 살아나는 구나!” 하는 부활의 전율까지 느낄 수 있어야 훌륭한 수준이다.
영성체 후 감사 침묵기도는 우리가 성체를 영한 후에 걸으면서 한 걸음걸음마다 기도를 담아야 하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도해야 한다. 성체를 영한 다음, 자기 입 밖으로 나오는 성가는 내 안에 오신 예수께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제는 성체를 영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로 이르게 하소서.” 기도드리고 성혈을 영할 때,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로 이르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또 성체 분배 후에도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이런 기도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영성체 후 기도= 이 영성체 후 묵상 부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결심하는 과정이 영성체 후 묵상의 목표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이제 내가 어떻게 예수님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과 제대로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진실하게 만나야 하는 모든 사람들 (내 가족이나 이웃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가장 일치감을 느끼기 쉬운 상대는 하느님이다. 완전하신 그분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불완전한 사람들과 일치를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침예식
강복 분위기= 이제 예수가 된 자신을 확인하고 예수로 살아야 하는 시간을 맞이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미사를 시작할 때는 이 전례적 행위에 “주님께서 함께 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지만 미사를 마치면서 나누는 이 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달라야 한다. 이미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아! 주님께서 나에게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로 인한 기쁨, 충만함이 인사로 증폭하여야 정상이다. 주님께서 나와 하나가 된 사실을 확인하는데 초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복의 현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이 강복으로 이제 나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일만 남았다. 이 장면에서 강복하시며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려도 좋다.
이 땅에 남겨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를 모신 사람답게 예수를 따라 예수로 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승천 후에도 모시고 산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
파견=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가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눕시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는 파견 선포에 우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로 살도록 파견하시는 하님께 “그렇게 살겠습니다.” “세상에 예수로 나가서 죄악과 싸우겠습니다.” 하는 의지를 바탕에 깔고 이제 거룩한 예수로 살게 된 것을 감사드려야 한다. 예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십자가에 못 박힐 영광을 얻게 된 것에 진심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미사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앞에서 미사가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