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단 배론성지 피정

2009. 11. 15. 오전 12:12:05

1
글자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심산 유곡(深山幽谷),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린다 

 

 

 

 

 안드레아 형제님과 율리엣따 자매님

 

 

 독서단 형제.자매님들과 가족들 그리고 여러 교우분들이 함께 하셨습니다.

 

 

 수산나 자매님과 모이세 형제님 부부

 

 

"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를 조각해 놓았고 그 안에는 납골 봉안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최양업 신부님 동상"

 

 

 

 

 

 

 

 

" 소성전 안의 성모님상 "  

 

  

" 황사영의 백서로 만든 제의를 입으신 신부님"

 

그 옛날 교우들은 박해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깊이 숨어들어야 했다.
그들 중 일부가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룬 곳이 바로 배론이다.
졸지에 재산과 집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을 한 교우들이 깊은 산 속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옹기 굽는 일이었다 
사람의 눈을 피해 신앙을 지켜 가던 옹기 마을에 최초로
역사적 사건이 터진 것이 바로 황사영 백서 사건이다.
창원(昌原)황씨 성을 가진 사영은 나이 16세에 장원급제, 정조가 친히 등용을 약조할 만큼
앞길이 창창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약종으로부터 천주학을 전해 듣고는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한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고난의 길을 택한 그는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을 빠져 나와 배론으로 숨어든다.

그 해 8월 주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그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하지만 백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히고 황사영도 대역무도 죄인으로 능지 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7세. 이 사건으로 그의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헌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고 십수 명이 공범으로 처단된다.

백서의 원본은 근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숨겨져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 백서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님과
이하림 도미니꼬와의 신부님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였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도미니꼬는 예비신학교에 다녔으며 지금은 잠시 무언가 생각이 많은
학생입니다.^^
여러분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신부님이 알아보시고 불러내어 선물을 주셨습니다.^^
 
온화한 미소와 정갈하고 깔끔한 성품에 품위가 있는 말씀과 강론
너무 좋았습니다.

 

 

 

 

 

 

" 신부님과 가족 기념촬영"

도미니꼬가 참 부러웠습니다.
저에게도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텐데...
어머니께서 제게 아마도 서른이 넘어 성당에 함께 다니길 권유했는데
그때에는 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교리공부를 다 하고 나서
세례를 받던 날 저 도망갔었거든요^^
그 땐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아! 다 때가 있구나 했습니다.
 
제게는 그때가 바로 하느님을 만났을 수 있었던 2000년 대희년에
루치아노와 함께 풍납동 성당엘 열심히 다녔던~~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어서....

 

 

 도미니꼬를 응원하면서 기념촬영^^

 

 

 

 

 도미니꼬는 고1 입니다. 좋은 추억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장길산 촬영지는 SBS와 제천시가 땅속에 뭍혀있던 봉우리를 발견한 곳이랍니다.

 

 

 독서단

 

 

 

 

 

 

 

 

 

 

 

 

" 청풍 공소 "

 

 

 

* 말을 위한 기도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 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내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는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게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해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강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난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더 겸허하고
좀더 인내롭고
좀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르는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 가게 하소서. 아멘
 
 수녀님께서 마지막에 들려주신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수녀님께서 1시간 피정을 해 주셨습니다.

 

 

 

 

 

 

 

 

 

 

 

 

 

 

 멋있고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윽한 그의 음성만으로도
충분했던 그런 만남이었던 곳

 

 

모두들 회상에 잠겨 있네요^^

 

 

 

 

 

 

 

 

가수 "홍민" 안셀모의 집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제천의 Live Cafe' 입니다.
"난 알아요", "고별", "석별"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작은 간증과 함께 들려주는 그의 노래들
어린 꼬마와 나이든 이들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댓글 3

  • 2009년 11월 16일 오전 11:41

    참 수고 하셨습니다. 즐거웠습니다.

  • 2009년 11월 16일 오후 11:21

    추운데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하림이한테도 좋은 하루였을 거예요.

  • 2009년 11월 18일 오전 9:23

    너무 좋은 날이였습니다..^^ 사진 찍으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