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배우자자랑!

2010. 11. 9. 오후 12:50:55

글자

 오늘자 조간신문의 바로 이웃한 페이지에 올해 84세 동서양 동갑노익장(同甲老益壯)에 관한 기사가 나란히 실린 것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로 연예인 송해씨는 “전국노래자랑” 공개방송을 30년째 맡아 진행해왔다는 기사이며 미국 팬실배니아주립대학 풋볼팀의 조 패터노감독은 400승을 달성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노익장(老益壯)이라는 용어는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좋아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일컫는 표현인데 빠르면 40대 후반에서 그리고 통상 50대 중후반이면 봉급생활을 접어야 하는, 그리고 청년실업문제에 묻혀 심각해지는 노인층에 대한 대책마련이 뒷전으로 밀린듯한 우리네 작금의 현실에서 두 분의 건재가 새삼 화제가 되나봅니다.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80세를 돌파하였습니다.(2008년 평균;80.08세, 여자;83.29세, 남자;76.5세 통계청자료) 늘어난 수명에 비해 사회는 아직 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근래의 인구감소에 따라 비중이 점차 커질 노인층에 대한 대비는 많이 부족하고 벌써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보다 훨씬 오래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의료부문의 발전 등으로 인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이제 화두(話頭)는 오래 그리고 잘 살아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장수국이라는 일본의 장수촌(長壽村)은 육체적인 일거리가 적당히 있는 농촌지역, 식사는 육식(肉食) 보다는 채식(菜食), 다식(多食) 보다는 소식(小食)을 하는 집단이 더 오래 산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통설이었으나 최근 미국에서 채집되고 분석한 수십년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가장 장수(長壽)하는 집단이 배우자가 있고 취미생활을 활발하게 하는 집단이며, 반면에 배우자도 없고 취미도 없는 집단이 가장 단명(短命)하다는 것입니다.

 배우자(配偶者) 혹은 배필(配匹)이라는 용어는 영어로는 ‘SPOUSE'인데 라틴어 SPONNUS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 뜻은 “약속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는 결혼하고자 하는 남자는 그 친구들과 신부될 여인의 집에서 이른바 ’약속식‘을 거행하여 결혼을 확정하기도 했다는 문헌이 있습니다.

 약속이라 함은 평생을 두고-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상대방에게 순결을 바치겠다는 것에서부터 결혼만해주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 아니면 설거지는 내가 도맡겠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많고 그 많은 종류의 약속을 모두 지키고 사는 사람이 바로 배우자라고 한다면, 우선 약속을 신중하게 해야겠지만 배우자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순결, 봉사, 의무 등등의 약속에 대해서는 무엇 보다 우선하여 엄수함이 배우자로서의 기본자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고 하겠습니다.

 한동안‘황혼이혼(黃昏離婚)’이라는 용어가 매스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남편이 사회생활을 끝내고 혹은 아이들이 모두 자란 이후에 주로 부인들의 요구에 의해서 발생하는 이혼에 대해서 조어(造語)에 능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용어인데 그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된다는 기사가 한때 우리에게 와 닿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주위에 늦으막하게 이혼한다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기도 합니다.

 2008년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55세 이상 인구의 이혼율은 남자가 4.4%, 여자가 3.0%로 되어있습니다. 남자의 이혼율이 더 높은 이유로는 아마 재혼후 다시 이혼하는 경우가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이혼후 다시 재혼하는 비율 역시 남자가 높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비율의 이른바 황혼이혼(黃昏離婚)의 주된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이유 그 다음이 배우자의 부정으로 되어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부동산 소유문제나 채무이행에 관한 문제를 해결키 위한 작위적인 이혼을 포함하여- 그리고 성격차이인데, 이 경우에도 내면적으로는 역시‘배우자의 부정’이 가장 많은 요인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혼의 사유는 약속의 불이행’이 많은 비중을 차지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결혼을 약속할 때 하였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이혼이며 의무와 약속을 어느 일방이 깨고 다른 일방이 이를 이혼의 형태로 약속불이행을 응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배우자가 없는 집단이 단명(短命)하다는 통계를 통해서 보듯이 혼자서 노년을 살아가는 것이 외롭고 정신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수명(壽命)에까지 영향을 미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혼을 단행할 정도로 약속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배우자를 만나면서 가슴 뛰면서 달려가던 그리고 헤어지기 싫어 뒤돌아보면서 아쉬어 하던 때의 그때를 이제 익숙해진 상대방과의 일상에서 가끔씩 되돌아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해도 달도 따다 주겠다던 그 때의 열정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달은 해는 못 따다 주겠지만 소소한 가사(家事)는 분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켜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배우자와 같이 추워져가는 날씨보다 더 추워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 앉아 잠시 같이 있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제라도 못 지킨 약속은 없는지 오랜 기억의 장들을 펼쳐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오랜 동안을 같이 했고 그래서 앞으로도 오랜-허락해 주신다면-시간을 같이 함께 할 모든 배우자들에게 그리고 당신이 함께 해 주어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준 자랑할만한 배우자들에게 다음 글을 바칩니다.

  ( 같은 신자로서 30년째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제 친구네 냉장고 문에 붙어있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

  

"강을 건널때까지"

 

당신이 주신 남자입니다.

젊은 시절의 달콤한 언약은

없을지언정

그의 신뢰는 잊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주신 여인입니다.

싱싱하고 고운 모습은 없을지언정

그녀의 희생은 잊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사랑보다

사소한 말다툼과

쓸데없는 자존심을 앞세울지언정

 

당신이 우리를 알게 하시고

당신이 우리를 맺어주셨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죽음의 강을 건널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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