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2011. 4. 9. 오전 9:21:32

글자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댓글 7

  • 2011년 4월 9일 오후 5:33

    신춘문예 작품을 읽는 느낌이 드네요 그들이 토해낸 글들이 대부분 이런식이었다는 느낌이 새삼 기억납니다..지질이도 찌들고 슬픈 그들의 분신들이...

  • 2011년 4월 9일 오후 8:44

    언제적 詩지요?

  • 2011년 4월 9일 오후 11:45

    함민복 시인은 1962년생이시며 검색을 해보니 이 시는 시인의 나이 34에 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수록된 시입니다. 짜장면에 대한 시를 떠올리면 첫번째로 올라오는 시이죠. 짜장면에 대한 노래는 잘 아시는 GOD의 노래가 있죠. 그리고, 시인의 같은 시집에 있는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 눈물이 진짜로 납니다. 감사합니다.

  • 2011년 4월 11일 오후 7:29

    쉽게 다가와 감동을 주는 시네요. <눈물은 왜 짠가>도 올려 주시면 안될까요?

  • 2011년 4월 13일 오후 7:02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방장님.

  • 2011년 4월 13일 오후 7:29

    Ass 구녕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이야기네요. 그 가난 중에도 진한 형제애 ,짜장면 집 부부애... 특히 저집 형수가 정말 대단하군요.

  • 2011년 4월 13일 오후 8:45

    제게도 저렇게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이 제가 갈기는 글의 밑바탕이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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