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마태오 28,8-15

2011. 4. 25. 오전 7: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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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14.22-33

14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오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동식물들 중에서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해서 내려오는 종이 있는 반면, 지금은 완전히 멸종되어 볼 수 없는 종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멸종 동물과 멸종 식물이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 인간들이 하도 잡아 죽여서 또는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즉,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종은 멸종했고, 그에 반해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한 종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남과 손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득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만약 인간만 이 세상에 살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니 자기 혼자만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어떨까요?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하루 중에 여러분 혼자서 살아간 시간은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한 마디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혼자 살 수 있다고요? 아닙니다. 내가 쓰고 있는 물건들,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을 따져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덕택에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과연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혼자서 살 수는 절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특히 이 모든 것을 다 관장하시는 주님을 외면하고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늬만 신앙인인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부님, 성당은 왜 이렇게 형식적입니까? 그냥 시간 날 때, 자유롭게 기도하면 되잖아요? 왜 미사라는 형식이 있어서 사람을 지루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당 나올 때마다 항상 고민입니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참여하면서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아서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몇 시간을 소비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는 단 몇 초 쓰는 것도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마음 때문에 주님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던 그분께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이 취한 모습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짓이 주님과 자신들을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 세상은 함께 걸어가는 곳입니다. 특히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할 때, 거짓으로부터 멀어지고 대신 참 진리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줄 수 있는 보물이다(플로베르).



안경

선글라스를 뺀 나의 두개의 안경(선글라스는 차 안에 있음)

저는 지금 세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상시에 쓰는 안경, 또 다른 하나는 운전할 때 햇빛이 너무 강렬하면 쓰는 선글라스, 마지막 하나는 책 읽을 때 보는 돋보기안경입니다. 이 세 안경이 모두 저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안경을 바꿔 써야 함이 저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합니다. ‘안경 없이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제 어떤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잘 보이지 않아서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완전히 실명을 할 뻔했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시력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이기에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안경 세 개 가지고 있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볼 수 있다는 것 하나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은총 속에 살고 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욕심……. 그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댓글 3

  • 2011년 4월 25일 오후 5:45

    너무 많은 은총 속에 살고 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욕심을 버리게 해 주소서, 아멘

  • 2011년 4월 25일 오후 7:34

    Amen!

  • 2011년 4월 25일 오후 10: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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