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0일 [남북통일 기원미사]
<오늘은 6월 25일에 드리는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4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용서는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손용환신부-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마태오 18,21)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18,22) 그렇다면 내가 용서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용서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족함 때문에 실수를 하고, 그 실수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만일 이런 실수들을 용서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한 순간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남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용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반복된 실수를 하고,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용서해주고, 친구들이 용서해주며,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늘 용서받고 있기 때문에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나도 용서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이 나에게 화를 내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화를 내면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특히 내 실수로 짜증을 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실수한 것을 용서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네 번째 이유는 용서는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살인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를 저주하고 모욕한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면 거꾸로 나도 삽니다.
그러기에 남도 살리고, 나도 살리기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서의 시를 바칩니다.
용서의 시
용서의 반대말은 증오랍니다.
믿는 사람은 용서를 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증오를 합니다.
증오를 하면 사람을 죽이고
용서를 하면 사람을 살립니다.
용서에는 사랑이 감추어져있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은 용서를 합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면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사람은 원망만 합니다.
자기만 알아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남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기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하면 행복해집니다.
자기도 남도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만나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도 남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자기의 결핍을 인정하게 되면
남의 상처도 감쌀 수 있습니다.
나도 용서받아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용서합니다.
그는 자기의 약점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의 약점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감사함도 없고, 긍정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단지 남의 탓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남이 용서해달라고 하기도 전에 용서합니다.
그는 남의 잘못 속에 숨겨진 자기의 잘못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용서는 망각도 아니고, 무시도 아니며, 덮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용서는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을 하면 섭섭함이 쌓이지도 않고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하면 또 하나의 용서를 낳습니다.
그런데도 난 용서해 주는 분량만큼 용서받는다는 것도 모르는 체
어리석은 인간이 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