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마르코 12,35-37

2012. 6. 8. 오전 6:47:46

글자

2012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제1독서 2티모테오 3,10-17

사랑하는 그대여, 10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11 내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박해를 견디어 냈던가!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12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사람들과 협잡꾼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복음 마르코 12,35-37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어제 낮 시간에 인천교구 전례꽃꽂이 월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미사 시간에 맞춰서 사무실에서 나와 미사장소까지 걸어갔지요. 그리고 미사장소에 도착하니 전례꽃꽂이 회원들이 밝게 맞이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너무 덥지요?”

그런데 저는 더위를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서울 낮 기온이 29도까지 올랐다고 하지요. 이렇게 무척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덥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원래 더위를 못 느끼기 때문에?

사실 어제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종합검진에서 눈에 약간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어제 재검을 했거든요(물론 검사 결과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 검사를 위해 안약을 넣어 동공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검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눈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가까운 것도 잘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눈에만 온갖 신경을 쏟다 보니, 그렇게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더위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지요. 그런데 내 마음이 어디에 맞춰 있느냐에 따라서 어려워 보이는 고통과 시련 역시 별 것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문제는 우리의 마음인 것이지요. 무조건 거부하고 마는 마음,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마음들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보다는 이에 고개를 숙이는 약한 모습의 나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메시아가 나온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다면 다윗이 메시아보다 더 윗분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이는 곧 인간적인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 인간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인데도 인간 일의 범주 아래 집어넣으니, 자신의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님을 반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인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낮춰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낮추고 있을까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 내 십자가를 얼마나 잘 짊어지고 있을까요? 나의 마음 안에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을 때, 즉 인간적인 기준보다는 주님의 기준을 내세우며 살아갈 때, 세상의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간직하며 살 수 있습니다.


늘 바깥쪽만 바라보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는 순간, 마음이 열린다(원성).



성모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묘비의 글

서양인들의 묘지는 저 멀리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가운데 혹은 성당 뜰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 가지런히 줄을 지어 서 있는 묘비에는 앞서 간 이에 대한 추모의 글이나 아쉬움의 인사가 새겨져 있지요.

한 형제님께서 묘지를 돌며 묘비들을 읽고 다니다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글은 단 세 줄이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줄이 이어졌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이 글을 읽자 그는 ‘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죽음에 대한 준비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쉽게 웃을 수 있는 가벼운 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그 준비는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준비는 바로 ‘오늘’을 결코 장난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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