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유다서 17.20ㄴ-25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르코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어제 아침에 장례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예전부터 알던 신부님의 아버님 장례미사였지요. 빈소가 인천의 어느 성당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 성당을 아침 일찍 서둘러 갔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도착했으나 너무나 조용한 것입니다.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성당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글쎄 이 성당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빈소가 모셔져 있는 장소와 장례미사의 장소가 달랐던 것이지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늦게나마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부랴부랴 갔습니다. 그러면서 화가 나는 것입니다. 제게 빈소만 이야기하고 장례미사 장소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다른 신부님 탓을 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장례미사가 이루어지는 성당까지 가면서 막히는 교통사정 탓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 시간대가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도 말이지요. 느리게 가는 차에 대해서는 늦게 간다고 화를 내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대해서는 왜 끼어드냐고 화를 내는 등 잘못된 모습을 많이 보였던 어제였습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이렇게 남의 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나에게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탓만을 하면서 내 자신의 합리화를 끊임없이 해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엄격한 철저히 이기적인 모습이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남의 탓을 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마음만 가득할 뿐, 행복과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런데도 왜 남의 탓을 계속 간직하려 할까요? 바로 자기를 내세우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행복의 길에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에 오히려 불행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적대자 역할을 하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받아야 할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잘못을 행하신 적이 없으며,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깎아내릴 것만을 고민하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높이고 예수님을 낮추려는 마음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의 마음이 아니라 철저하게 겸손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인내를 절친한 친구로, 경험을 지혜로운 상담자로, 신중을 큰형으로, 그리고 희망을 수호신으로 두라(조셉 에디슨).
잔잔한 서해바다. 볼 때는 멋있었는데... 막상 찍고보니 별로네요. ㅠㅠ
어떤 사람과 가까이 할 것인가?
인간은 이웃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즉, 관계 속에서 거듭 거듭 자신의 모습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는데 도박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한 술꾼과 어울리는데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를 가까이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죄의 유혹에 자주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과 가까이하면 자기 자신도 지혜로워집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자기 자신도 선을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지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으며, 어떤 모습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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