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서로 화해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나 잘해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들과 화해할 일이 없는데 제가 무슨 용서를 합니까?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두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과 무슨 화해를 하며 내가 왜 그들을 용서 해야 합니까.
아니지요. 사랑과 용서도 놓여야 할 자리가 있는거 아닌가요. 고통을 주었다는 의식조차 없는 사람한테 가서, 우리 화해하자, 난 너를 사랑해 한다면 그가 오히려 물을거요. 뭘 화해하고, 네가 날 왜 사랑하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서로 화해하고 그래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받아주고 용서해야 한다고, 그건 용서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좋은 말이지요. 그걸 누가 모르나요. 그리고 덧붙이고 계시더군요.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정말이지. 무책임하기 짝이 없어요.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한다니요.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일치라고 하면서 한 말이에요. 일치, 하나가 되기 위해서 선행돼야 하는 건 당연히 가해자의 사죄 입니다.
먼저 사죄해야지요. 뉘우치지 않는 자를 어떻게 용서 하나요?
그들은 잘못이 없는데 무얼 가지고 용서를 합니까?
상처나 고통을 준 자들의 뉘우침이 없는데 오히려 상처 받은 자들이 먼저 그들을 용서 하라는 건가요? 그건 정말이지 무책임한 말입니다. 용서해야 하는 쪽의 또 다른 고통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무책임 입니다. 저희들은 성인이 아니라서인지 그렇게 밖에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도 했어요. 용서의 반대가 미움이라면 우리가 미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아요?
“아 신부님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잊어야 하는데 잊히지가 않고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멜번에 사는동안 평생이 고통이 될지 모르지요.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 가야하는 이 처지가 더욱 용서 할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용서 할 수 없는 걸 가슴에 품고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이고통을 신부님은 모르시는 겁니다. 틀에 밝힌 말,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라는 걸 좀 더 깊이 생각하셨다면, 아니 저희들같이 비범하지 못한 신자들의 지난 몇년간의 그 아픔 까지도 좀 더 깊이 헤아리신다면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그 파랗게 젊은 신부의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내고 그 아픔이 끝내는 우리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영원히 씻겨지지 않을 지도 모를 죄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간단하게 묻고 싶습니다. 같은 사제로서 어떤 느낌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아니 어떤 두려움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 상처의 치유는 어떤 시간과 공간이 지나가야 하는지를 생각치 않으시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물건을 만들어서 실적을 올려야만 하듯이, 화해와 일치를 끝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그렇게 서두르시는지,,,,
달라이라마같은 성인이 한말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용서는 삶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수행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받아야 했던 고통과 그런 고통을 우리에게 가했던 자들을 용서하지 못한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도 힘듭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일치와 화해를 이루자고 하시는데, 그렇게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고통을 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 합니까?
저희들은 목자를 따라가는 한낮 양떼 일뿐이기에, 이렇게 미련하고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저희에게 희망의 빛과 소금이 되어 주십시오. 대주교님의 명령이라고 통고 하시면서 따라오라고 욱박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외국땅 멜번에 살지만은 우리는 한인 공동체 입니다. 왜 한인의 일을 자꾸 외부세력에 의존 하려하십니까? 한국을 벗어나서도 사대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시려 합니까? 카톨릭이 권위와 역사와 순명이기에, 대주교의 命이면 모두가 끔뻑 죽어야 하지요. 그러나 그젊은 신부를 내치고 죽음에 이르게 한것도 부족해서 그뒤로는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 대주교를 등에 업고 나오시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멜번 소수민족 공동체의 사소한 일을 일일이 간섭하시기에 대주교님이 그렇게 한가하시지는 않으실줄 짐작이 됩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양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그 양들의 눈망울을 가만히 쳐다 보세요.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신부님. 양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거에요. 좋은 양치기는 그렇게 쉽게 될 수 있습니다. 두공동체의 아픔에 어떤 처방약이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지 신부님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 양순한 양떼들은 목자를 따라만 가면 되는거 아닌가요?
글의 대부분은 -한수산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中에서 따왔슴을 밝힙니다. 용서와 화해와 일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우리공동체의 아픔과 치유에 적절한 표현이 많기에 존경하는 한수산작가님의 글을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