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억의 시 몇 편

2006. 1. 25. 오전 12:05:21

글자

<님의 침묵> 한용운 - 사랑의 시인, 민족의 시인, 구원의 시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

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

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

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

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

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내 노동으로> 신동문 - 삶을 통한 시의 완성

 

내 노동으로

오늘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

 

 

<풀> 김수영 - 앞을 향하여 달리는 살아 있는 정신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돌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도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댓글 1

  • 2006년 2월 2일 오전 12:26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보내지 않은 님과 영원히 함께 살겠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으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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