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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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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필레몬서 7-20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친애하는 그대가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는 말을 듣고 큰 기쁨과 위안을 받았습니다. 나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신이며 그분을 위해서 일하다가 지금 갇혀 있는 몸으로서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 거리낌없이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대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내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와 또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내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갇혀 있는 터이니 그를 내 곁에 두어 그대를 대신해서 내 시중을 들게 하려고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가 선을 행하는 것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서 그대와 같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보든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견지에서 보든지 그대에게야 그가 얼마나 더 귀중하게 생각되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 주시오.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그 책임을 나에게 지우시오. "나 바오로가 그것을 다 갚겠다."고 이렇게 친필로 보증하는 바입니다. 그대가 지금만큼 된 것도 나의 덕인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그대에게서 그 값을 요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형제인 그대에게 신세를 지려고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로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오.
복음 루가 17,20-25 그때에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아라, 저기 있다.' 혹은 '여기 있다.' 하더라도 찾아 나서지 마라. 마치 번개가 번쩍하여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하게 하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그날에 그렇게 올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은 먼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감동적인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의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들은 내 등의 짐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 짐만 없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도 전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게끔 하는 진정한 힘은 내 등에 있는 짐들이라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토록 없어졌으면 하는 많은 문제들인 각종 일들, 책임, 고민, 고통 등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지난 5월부터 이곳 갑곶성지에서 두 명의 신학생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생들과 저녁 일과가 끝나면 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것은 ‘부르마블’이라는 보드 게임입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빌딩, 호텔, 별장 등을 지으면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해 나가는 게임인데요. 이 게임만 하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낮에 많은 일들로 인해 몸이 피곤할지라도 이 ‘부르마블’ 게임만 하면 피곤을 잊게 됩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도 이 게임만 하면 그 문제들을 까맣게 잊게 됩니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게임으로도 나의 각종 문제점들을 잊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진 마음으로 다시금 그 문제점들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됩니다.
바로 나를 괴롭히는 그 문제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는 것은 물론, 그 문제들의 해결 방안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측면으로 보다 보니, 오늘 복음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행복함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문제들을 해결하는 이 세상 안에서 그리고 이 문제들의 극복 안에서 얻게 되는 행복들로 인해 우리 가운데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고통, 힘듦 까지도 사랑하는 마음, 이것조차도 주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에 소중하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시도 하느님 나라임을 굳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빨리 지나가야 할 세상입니까? 아니면 진정한 하느님 나라입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집시다.
난 가슴에 무엇을 품엇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어떤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쁜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만족과 불만 중 어느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고 살면 됩니다.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품어도 되고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 하나, 미소짓는 그리운 얼굴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품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될 수 밖에 없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