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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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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키엘 47,1-2.8-9.12 그 무렵 나는 [천사에게] 이끌리어 [주님의] 성전 정문으로 가 보았다. 그 성전 정면은 동쪽을 향해 나 있었는데, 그 성전 동쪽 문턱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물은 제단 남쪽으로 해서 성전 오른쪽 벽에서 뻗은 선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나는 그분에게 이끌리어 북문을 나가 바깥 길로 해서 바깥 동문께로 돌아가 보았다. 물이 그 대문 오른쪽에서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 물은 동쪽으로 가다가 메마른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된다. 이 강이 흘러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로 흘러들어가든지 모든 물은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가 득실거리게 된다. 이 강이 흘러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 이 강가 양쪽 언덕에는 온갖 과일 나무가 자라며 잎이 시드는 일이 없다.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달이 새 과일이 나와서 열매가 끊어지는 일이 없다. 그 열매는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된다."
복음 요한 2,13-22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 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자매는 매일 성전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제대 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이 얼마나 크십니까? 당신 오른 손목에 박힌 못을 빼서 제게 주십시오.”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어요. 이 모습을 본 다른 신자 하나가 혼자 중얼거립니다.
‘흥, 자기만 열심히 하나, 나도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 보여드려야지.’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저에게는 왼 손목에 박힌 못을 빼서 제게 주십시오.”
그런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께서 이 기도에 곧바로 응답하십니다.
“아서라. 양손의 못을 모두 빼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오랜만에 큰 소리를 내면서 웃었는데요. 문득 떠올려지는 생각이 있네요. 어쩌면 우리들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말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는 하지만, 그 말과 행동이 정작 주님의 입장에서 서지 못하는 그래서 상처만 주는 행동과 말은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과격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쎄 성전 상인들을 향해서 채찍질은 물론, 돈과 상을 둘러엎기까지 하십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하실까요? 바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상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에 봉헌할 동물들을 판매하고, 성전에서 사용할 화폐를 환전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전 안에서 행하고 있는 일이기에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겠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채찍질과 상을 둘러엎으시는 예수님의 과격한 행동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뜻을 앞세우는 이 성전은 이제 필요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곧바로 허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어떤 성전을 쌓고 있나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나의 뜻만이 가득 쌓인, 그래서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성전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뜻이 들어있는 성전이 아닌, 주님의 뜻이 담긴 성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고,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바로 이러한 주님의 성전이 되게 하소서.
어떤 일에 대해서 내 입장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합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행복한 동행 2004.11월호) 세계 최정상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 그가 1996년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서 패션과 예술이란 주제에 대해 강연할 때였다. 한 학생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장 캠퍼스를 나가면 정문 앞에서 거지들이 손을 내밉니다.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허다하고요. 그런데 단 한 벌의 옷값이 지구의 몇 천, 몇 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인 오트 쿠튀르 같은 고급 기성복이 과연 존재해야 할까요?”
그러자 라거펠드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구의 모든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는 그들을 위해 꿈까지 버려야 할까요? 오트 쿠튀르는 사치도 허영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꿈이며 희망입니다. 빵은 우리를 살아가게 해 주지만 꿈과 희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