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1/8)

2004. 11. 8. 오전 8: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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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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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디도서 1,1-9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들의 믿음을 도와주고 우리 종교의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사도로 임명되었습니다. 우리 종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 하느님께서 아득한 옛날에 벌써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셨으며 나는 우리 구세주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 사도직을 맡았습니다.
나와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진실된 아들 디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평화를 그대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내가 그대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 두고 온 것은 내가 거기에서 다 하지 못한 일을 그대가 완성하고 내가 일러둔 대로 도시마다 교회의 원로들을 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원로가 될 사람은 흠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하고 한 여자만을 아내로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신자라야 하고 방탕하거나 순종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감독자는 하느님의 집안일을 관리하느 사람으로서 흠잡힐 데가 없고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성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고 폭행을 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독자는 오히려 손님 대접을 잘 하고 선을 사랑하고 신중하고 올바르고 거룩하고 자기를 억제할 줄 알고 교회가 가르치는 진실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가르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반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 루가 17,1-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셰드 헴스테더는 “인간은 하루에 약 5만~6만 가지 생각을 하며, 이 중 75%인 3만~4만 가지는 저절로 부정적으로 흐른다. 그리고 95% 생각은 되풀이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람들이 “왜 나만 불행할까, 살기 싫어. 죽겠네.”라는 비극적인 신세 한탄을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로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들이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지요.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 부정적인 말들이 전달되어 그 사람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생각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어쩌면 남들에게 받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서 늘어난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또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른 이에게 부정적인 마음으로 전달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나의 긍정적인 생각들로 인해서 다른 이들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저는 이런 체험을 올해 초에 아주 강하게 했었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사제관은 무척 춥습니다. 우선 사방은 2미터짜리 창문으로 채워져 있고요. 천장의 높이는 2미터 80센티미터이기에 외풍이 너무나 심합니다. 더군다나 보일러도 되지 않는 상황이지요. 아직 추운 겨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금 새벽의 방 온도가 11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결코 춥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올 초에는 조금 나았을까요? 아닙니다. 지금이나 올 초나 사제관이 나아진 점은 없습니다. 나아진 점을 찾는다면, 석유난로가 하나 생겼다는 것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올 초 제가 갑곶성지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살고 있는 환경이 바뀐 것은 없는데도, 체중계에 올라가면 ‘80’이라는 숫자까지 가는 것을 보니까 행복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올 초에 이곳을 왔을 때, ‘이런 곳에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상태.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일 뿐이었지요. 그 결과 살만 빠지고 되는 것도 없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순례객들이 늘어나고, 순례객들의 기도 소리가 커지면서 성지의 모습도 하나 둘씩 저절로 바뀌어 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성지는 돈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바로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바로 마음이, 보다 더 긍정적인 마음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할 일이 있다면 무조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내가 용서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하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해서. 즉, 긍정적인 마음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기에,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용서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떠세요? 행복하십니까? 행복할 때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긍정적인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할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가요? 분명히 부정적인 말이 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최대한 긍정적인 말을 하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해보세요. 행복해집니다. 물론 단점은 있어요. 행복하면 살찌던데…….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소리도 합니다.

“보기에 좋아요.”


부정적인 말은 쓰지 맙시다. 행복을 쫓아냅니다.



밝고 행복한 얼굴(홍성중,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 ’ 중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얼굴을 만드는 과정은 한 가지 표정을 오래도록 떠올리는 것이다.

늘 걱정하는 사람은 얼굴에 스스로 주름살을 새기는 것이다. 밝고 아름다운 얼굴도 늘 불만을 품고 있으면 어둡고 우울한 모습으로 결정지어진다. 누군가에게 원망을 품고 있다면 자신의 얼굴은 흉측스럽게 일그러지고 말 것이다.

좋은 얼굴을 만드는 방법은 기쁨을 가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매양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매양 친절한 얼굴을 보인다면 더없이 밝고 행복한 얼굴이 만들어질 것이다.

5파운드를 줍기보다는 행복한 사람과 마주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얼굴을 가꾸는 데에 최대로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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